궁보무사 <193>
궁보무사 <19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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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저희들이 타고 팔결성에 돌아갈 말입니다"

13. 쫓기듯이 달리는 자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 거의 다다라서야 그녀는 집안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양청 의원 앞에 실려오게 되었다. 그때 양청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녀를 살려보려 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음을 알았다.

자기 눈앞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저 얄미웠던 여인!

양청은 결국 커다란 화근이 되고 만 그녀의 아래 그곳을 손으로 만져보며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쯧쯧쯧. 이 구멍으로 그때 나를 그토록 당혹스럽게 만들어놓더니, 자기 스스로 이 구멍 속에 빠져 죽는 셈이 되었구먼! 어음 쯧쯧쯧.'

결국 그 여인은 숨을 거두었고, 양청은 그 후 가끔씩 그녀의 무덤으로 찾아가 비싼 술을 주위에 골고루 뿌려주며 그녀의 불쌍한 혼백을 달래주곤 하였다.

"아니 여보! 뭐해요 빨리 성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해야지!"

못생긴 아내가 앙칼진 목소리로 양청에게 다시 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양청은 실로 오래간만에 자기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엔 너무 바빠서 한밤중 이부자리 속이라면 모를까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 아내의 얼굴을 이렇게 환한 백주 대낮에 쳐다보니 양청은 아침에 먹었던 것들이 욱하고 토해낼 만큼 심한 역겨움을 느꼈다.

여자가 못 생겨도 어느 정도가 있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완벽할 정도로 못 생길 수 있는가. 그러니 이런 여자가 낳아놓은 내 자식들 인물이 아주 형편없지.

애비인 내가 봐도 어린 자식들 인물이 신통치 않게 보일진대, 다른 사람들의 눈엔 얼마나 지지리 못나 보이겠는가. 바로 이때, 양청은 그의 등 뒤로 갑자기 뭔가 와 닿는 섬뜩함을 순간 느꼈다.

"으으응"

무심코 고개를 돌려본 양청은 깜짝 놀랐다.

사방 주위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지꼴 차림의 험상궂은 사내들!

그들의 손에는 제각각 나무로 만든 칼이나 몽둥이, 돌멩이 따위가 쥐어져 있었다.

원래 넓고 기름진 오창평야를 차지한 팔결성에는 먹을거리가 풍족하므로 이렇게 거지같은 자들이 무장을 해가지고 팔결성 주위를 떼로 몰려다니다가 팔결성 병사들에게 간혹 잡혀 죽거나 다치곤 하였다.

그런데 오늘 재수가 너무 없다보니 본의 아니게 잠시 쉬고 있던 양청 내외가 이들에게 덜컥 걸려든 것이었다.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제발! 방금 전 저희들은 죄다 털려서 가진 게 없습니다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양청이 갑자기 땅바닥 위에 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싹싹 빌어댔다. 못생긴 그의 아내도 그제야 깜짝 놀라 양청과 함께 두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어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니 그럼 대체 이건 뭐냐"

바싹 다가온 거지들이 마차에 매여 있는 말 두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고, 그, 그건 저희들이 타고서 팔결성에 돌아갈 말입니다요."

양청이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 너희들이 팔결성으로 되돌아가 아니, 팔결성에서 쫓기듯이 여기까지 도망쳐 왔으면서 거길 다시 돌아가겠다고"

"우리가 못 봤을 줄로 아느냐 너희들이 아까 마차를 타고 팔결성을 빠져나오는 걸 먼발치에서 보고 혹시나 해서 우리가 부랴부랴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우이히히히."

"헤헤헤헤."

"우후후후."

징그럽고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리며 거지들은 마차에 매달려있는 말 두필을 풀어냈다. 양청 내외는 그저 와들와들 떨기만 할 뿐 싫다고 하는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어라 가만있자. 여기 술이 있는데"

어느 누가 방금 전에 양청이 마셨던 술병을 집어 들고 기쁜 듯이 외쳤다.

"아이고! 이게 웬 떡! 아니, 웬 술이야 으흐흐흐. 오늘 재수가 좋다보니."

거지들은 양청의 아내 오줌물이 섞여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들 딴엔 사이좋게 한사람씩 돌려가며 맛있게 한 잔씩 쭉쭉 들이 마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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