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고해성사
나이에 대한 고해성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10.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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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먹는 재미로 산다지만 약보다 먹기 싫은 게 바로 나이이다. 약이야 아파도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이놈의 나이는 안 먹을 방도가 없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배설할 수 없는 나이. 또한 아무리 먹어도 돈 달라고 하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물릴 수 없고, 먹는다고 누가 제지하거나 간섭도 하지 않는 게 나이이다.

오늘 아침 그 나이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나이한테 미안한 게 많아서다. 나이한테 해준 게 없어서다. 나이한테 염치가 없어서다. 먼저 나이 값을 못하고 산 죄를 고백한다. 회갑을 지나 손녀까지 보았건만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여전히 천방지축이고 여전히 응석꾸러기로 사니 그 죄 실로 크다. 나이 갖고 장난친 죄를 고백한다. 젊었을 때는 형 대접받고 싶어서 나이를 한두살 올렸고 쉰이 넘어서는 덜 들어보이려고 나이를 줄였다. 나이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한 죄 그 또한 크다. 나이를 원망한 죄도 고백한다. 호적나이가 줄어 직장생활을 더 오래하는 동료를 시샘했고 내 부모님도 저들처럼 호적신고를 늦게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부질없는 원망 그 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허나 이제는 늙기 서러워 대놓고 나이한테 반기를 든다. 

오승근이 2012년 여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노랫말이 장년층의 마음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이렇게 나이와 사랑을 교묘하게 매치시켜 나이 들어 시들해진 연심을 자극하고 도발하게 만든다. 가족 건사하느라고 일 밖에 몰랐던 지난 청춘들에게 보상받으라고 마구 충동질을 한다. 사랑에 나이가 없고, 조금 늦긴 해도 지금부터라도 마음껏 사랑할 테니 세월아 비켜라 이거다. 그러니 50~60대들이 이 노래에 심취하고 열광하는 거다. 

그러니 이미 초등학교 동창회 주제곡이 되어버린 이 노래를 천박하다고 어찌 탓할 수 있으랴.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행가는 유행가일 뿐 심연에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헤아려 봐야 한다. 젊었을 때 아무리 치열하게 살았다 손 치더라도 나이 먹어 아무렇게나 사랑이나 하면서 대충 어영부영 살 수는 없을 터. 나이 값을 하고 있는지, 나이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이를 먹어 갈 건지에 대해 대차대조표를 내 놓을 때가 되었다. 

노년은 장년의 얼굴이며 장년은 청년들의 반면교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한두 번의 삶의 일탈은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든, 시나 서예나 그림이나 음악 등의 창작활동을 해보는 것도, 스포츠댄스나 골프 같은 하고 싶은 운동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이를 먹는 건 순리이자, 삶의 궤적이다. 잘난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쭐대지만 그러나 나이에는 분명 무게감이 있다. 세월의 두께만큼 말이다. 그 무게감과 존재감을 느낄 때 비로소 나이가 되고 연륜이 된다. 

나이를 안 먹는 방법은 나이를 잊는 것이다. 나이를 잊고 일과 사랑과 예술과 가치 있는 일들에 몰입하면 된다. 

몇 년 전 나이아가라폭포에 가서 ‘나이야 가라’고 외치고 온 적이 있다. 진정 그렇게 살 일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시간을 소중히 쓰면 나이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훈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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