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셋, 너그러움이 권위의 참된 힘
일흔셋, 너그러움이 권위의 참된 힘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10.16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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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民不畏威(민불외위)라야 則大威至(즉대위지)니 無狎其所居(무압기소거)하고 無厭其所生(무염기소생)하여 夫唯不厭(부유불염)으로 是以不厭(시이불염)하라.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自知(자지)나 不自見(불자현)하고 自愛(자애)나 不自貴(불자귀)하니 故(고)로 去彼取此(거피취차)하느니라.

-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위엄이야말로 큰 위엄의 극치니 그 살아가는 곳을 억누르지 말고 그 삶을 괴로움으로 느끼게 하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싫어하지 않으면 싫어함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사는 이는 스스로 알지만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만 남보다 두드러지기를 거절하니, 그렇기 때문에 저것은 버리고 이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권위’,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코딱지만한 권력이라도 움켜쥐면 갖가지 방법으로 위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이들의 모습인데 옛늙은이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런 것은 권위라고 할 수 없으니, 참된 권위의 극치는 다른 이들이 그 권력에 정서적으로 동의를 할 때에만 비로소 제대로 된 권위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권력의 힘으로 쓸데없는 위세를 부리는 것으로, 사는 곳을 억압하여 그 태어난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을 하는데 도대체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는 탄식이 없는 세상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안다고 하여 그것을 도구나 무기로 삼아 남의 윗자리에 오르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권력의 자리에 있더라도 그것으로 다른 이들이 치이거나 눌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섬세한 살핌의 마음자리를 나타낸 말일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것은 버리고 이것은 취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버려야 할 것은 畏威(외위: 다른 이들이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권위)이고, 취하게 되는 것은 不畏威(불외위: 다른 이들이 기꺼이 수용하는 권위)라는 것이야 뭐 어렵지 않게 연결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부드러움과 너그러움, 그리고 따사로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 세 가지가 사람 됨됨이의 이름이라는 것을 헤아리면 어떤 삶이 바람직한 건지를 얼른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언제 또는 어디에서 부드럽고 너그러우며 따사로워야 하는지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나 규범, 또는 법률로만 삶을 규정하는 세계야말로 사는 것이 짓밟힘이고 태어난 것이 원망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니 그런 삶의 틀이라고 하는 것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헤아린다면 거기서 부드러움과 너그러움, 그리고 따사로움이 절로 우러나지 않겠는가 싶은 겁니다.

푸르름이 짙어가다 보면 거칠어지는 것이 사실인데 그 거칠어질 무렵 은은한 단풍이 되는 가을, 서리가 내려 마음을 베일 것 같다가도 이내 눈이 되어 푸근함으로 다가오는 계절의 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나 자신은 어제까지 얼마나 부드러우려고 했는지를 살피며 오늘 이야기를 여기서 접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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