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91>
궁보무사 <191>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10.1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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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쫓기듯이 달리는 자
"얘들아, 그만 두어라! 그러다가 사람하나 잡겠다"

"얘! 말해봐! 조금 전에 저 사람이 네 배 위에 올라타서 이상한 짓을 한참 해댔지"

이웃집 처녀는 여종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여종은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어서 당장 말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꼼짝없이 뒤집어쓰고 망신을 당하게 생겼잖아"

처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자기 여종을 마구 다그쳐댔다.

"그, 그랬어요. 저 사람이 방금 전에 제 배 위로 올라가서."

여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울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 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바로 당신 배 위에 올라탔었는데!"

양청이 크게 당황한 목소리로 이웃집 처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머머! 망측해라! 내가 내 배 위에 남자를 태우다니요"

이웃집 처녀는 외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양청을 무섭게 째려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자라모가지 같은 길쭉한 내 고깃덩어리를 덥석 움켜 잡아가지고 당신 두 다리 가랑이 사이 작은 수풀로 뒤덮여 있는 조그만 옹달샘 안에다 퐁당 담가주려 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시치미를 똑 잡아떼는 거요 자! 여러분!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녀의 아래 그곳에 직접 손을 대고 질퍽한지 않은지를 알아보면 될 것이외다."

양청이 너무 약이 오르고 화가 나기에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 자식이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바로 뒤에 있던 어느 누가 양청의 등판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이쿠!"

양청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앞에 있던 자가 그의 가슴팍을 발길로 걷어찼다.

"으으윽!"

양청은 발로 채인 앞가슴이 너무 아파 두 손으로 매만지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려 했지만 사방에서 그의 몸을 부추겨 세워주는 고맙지 않은 손길들이 있어 마음대로 쓰러지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곧이어 그의 몸 위에 주먹질과 발길질이 연달아 퍼부어졌다.

"아서라! 얘들아! 그만 두어라! 그러다가 사람 하나 잡고 말겠다."

이웃집 처녀의 아버지는 양청이 확실하게 얻어터지는 걸 확인해 보고나서야 능청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자기 하인들을 뜯어 말리는 척하였다.

"장인 어르신! 제발 믿어주십시요. 방금 전 저와 따님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은 저 어두운 밤하늘이 지켜봤고 시커먼 땅이 알고 있사옵니다. 분명히 저는 댁의 따님을."

양청은 여기까지 말을 꺼내다가 갑자기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그의 앞에 서 있는 키가 큰 하인 한 놈이 절굿공이처럼 크고 굵은 몽둥이를 한 손으로 번쩍 집어들고 있기에 자칫하다간 자기 머리통이 그대로 빠셔질 것만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얘야! 이 애비가 너에게 다시 묻겠다. 네가 정말로 저 총각에게 당했느냐"

처녀 아버지가 여러 사람들이 한 번 들어보라는 듯이 아주 큰 소리로 자기 딸에게 물었다.

"어머! 전 아니에요. 전 절대로 당하지 않았어요."

처녀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럼, 혹시 네가 당했느냐"

처녀 아버지가 이번에는 여종에게 물었다. 여종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으앙! 하고 울음을 크게 터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제 잘못이옵니다. 제가 몸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옵니다.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여종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이런 꼴을 보고나니 양청은 너무나 기가 막히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양청은 꼼짝없이 저 못생긴 이웃집 여종을 한밤중에 겁탈하려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들키고 말았다는 누명을 완전히 덮어쓰고 말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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