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9>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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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을 바꾼 파에튼 콤플렉스
   
▲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신과 사람들의 세계가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제우스는 파에톤을 향해 벼락을 던졌고, 벼락을 맞은 파에톤은 에리다누스 강에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HEINTZ, JOSEPH THE ELDER 파에톤의 추락 1596).
애정결핍이 부른 죽음 파에톤의 추락

'파에톤 콤플렉스'란 어린 시절 겪은 애정 결핍으로 인해 지나치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박증을 말한다. 비정상적 민감성, 고독감과 부적응, 만성 우울증과 공격성, 신경증적 소심증, 다재다능에 대한 강박증, 애정에 대한 충동적 욕망, 조바심과 자기파괴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성공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에게 많이 나타나는 콤플렉스이다. 재능이 뛰어난 자녀일 경우 파에톤 콤플렉스로 인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기도 하지만, 부모보다 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능력 이상의 성취를 추구하다 실패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란 흔치 않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신의 경우에 특히 그렇지만, 태양과 달을 주관하던 신이 바뀐 대사건은 순전히 파에톤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당시 태양과 달을 주관하던 신은 헬리오스와 셀레네였다. 태양신 헬리오스는 매일 아침 태양 마차를 몰고 동쪽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질러 저녁에는 먼 바다 서쪽에 내렸다. '해가 뜬다'는 것은 태양 마차가 동쪽에 떠오르는 것을 뜻하고, '해가 진다'는 것은 서쪽 바다에 마차가 내리는 것을 의미했다. 태양신의 마차가 바다에 잠기면 누이인 달의 여신 셀레네가 떠오른다.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다.

"네 아버지는 이 세상에 빛을 주는 태양신 헬리오스란다.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라."

파에톤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친구들에게 태양신의 아들임을 자랑하곤 했지만, 친구들은 태양신의 아들이 어찌 이리 형편없이 사느냐며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제가 정말로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아들임을 인정받고 오겠습니다."

파에톤이 찾아간 태양신의 신전은 웅장하고 화려했다. 신전의 내부는 온통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태양신의 좌우에는 일(日)의 신, 달(月)의 신, 연(年)의 신, 그리고 사이로 때(時)의 신들과, 화관을 쓴 봄의 여신, 곡식 대궁이 관을 쓴 여름의 여신, 발에 포도즙이 묻어있는 가을의 여신, 얼음같이 차가운 얼굴을 한 겨울의 여신이 서 있었다.

파에톤은 태양신으로부터 아들임을 인정받았다. 버리다시피 했던 아들이 늠름하게 자라 찾아온 것에 마음이 움직여서일까, 태양신은 아들의 어떤 소원도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게 해 달라고 했다.

"아들아, 태양 마차를 모는 일은 너무도 위험해서 신들의 제왕 제우스도 겁을 낼 정도란다. 그러니 어서 다른 소원을 말해 보아라."

태양신은 파에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끝내 소원을 들어주어야 했다. 어떤 소원이든 반드시 들어주겠다는 사전의 약속 때문이었다. 파에톤은 의기양양하게 태양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를 끄는 네 마리 말은 태양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마차에 탔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무섭게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말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갑자기 곤두박질치는 등 제멋대로 날뛰었지만, 파에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양 마차가 땅에 가까이 닿으면 뜨거운 열기로 인해 강과 바다가 말라 버릴 지경이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조차 수면 위로 얼굴을 못 내밀 정도였다. 신화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인들이 피부가 검은 것은 이때의 열기로 인해 피가 살갗으로 몰렸기 때문이며, 리비아 사막도 이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신과 사람들의 세계가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제우스는 파에톤을 향해 벼락을 던졌다. 벼락을 맞은 파에톤은 에리다누스 강에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물의 님프들이 그의 시체를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어 주고 다음과 같이 비문을 새겼다.

'아버지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를 몰던 파에톤이 제우스의 벼락에 떨어져 이 돌 아래 잠들어 있다. 태양 마차 모는 재간이야 헬리오스 같이 못하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 한가'

파에톤의 누이들은 슬피 울다 강가의 포플러 나무로 변했으며, 이때 이들이 흘린 눈물이 강에 떨어져 호박(琥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헬리오스가 책임을 지고 태양신의 자리에서 물러나자 아폴론이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자녀가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뒤, 아버지보다 더 큰 일을 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불행을 가져왔다. 자신의 죽음뿐 아니라, 아버지의 태양신 지위까지 잃게 만든 것이 파에톤 콤플렉스였다고 신화는 말하고 있다.

최근 인공태양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ITER(International Thermo Nuclear Reactor)로 불리는 국제열핵융합실험 프로젝트이다. ITER는 약 500초 이상 500㎿ 이상의 전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미래에너지를 확보한다는 명분에는 찬성하지만, 이러한 에너지가 올바르게 잘 사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파에톤 한 사람의 왜곡된 욕구로 인해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될 뻔한 신화의 교훈과 태양 에너지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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