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닦는 청년
구두 닦는 청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9.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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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지난 주말 서울에 사는 지인의 결혼예식에 참석했다. 개인 용무를 모두 뒤로하고 모처럼 휴일을 반납한 셈이다. 남편의 출석 수업으로 내가 대신 참석했다. 몇 년 전 우리 둘째 결혼식 때는 지인의 부부가 참석하였기에 우리도 함께 가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혼자 참석하게 되어 아쉬웠다.

결혼식을 모두 마치고 하객들이 예식장 앞 나무그늘에 쉬고 있었다. 그 옆 버스 정거장 옆에 결혼식 하객으로 보이는 나이가 좀 든 한 남자가 구두를 맡기고 슬리퍼를 신고 기다리고 있다. 난 다리가 아파 예식장 외부의 난간에 앉아 구두닦이 하는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맨손으로 구두약을 묻혀 구두에 발라 정성 들여 문지르고 이어 보드라운 헝겊으로 윤을 내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노란 병에서 따른 액체를 헝겊에 묻혀 바르고 닦는다. 구두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맡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바로 난간에서 내려와 내 검은 구두를 벗었다. 고무 한쪽이 달아 수선을 의뢰했다. 3,000원이라고 했다.

사실 지난번 대리점에 맡겼을 때는 5,000원을 받았다. 시간도 오래 걸려 일주일이나 되었다. 참 저렴했다. 그 청년은 구두 굽의 끝 고무를 떼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내 구두를 조금 전처럼 그렇게 정성 들여 닦았다. 먼지가 묻었던 구두가 말끔해졌다. 새 구두보다 더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러면서 그 청년은 “구두가 길이 잘 들어 윤이 잘 난다.”라고 했다. 여자구두는 잘 닦지 않기 때문에 윤이 잘 안 나는데 내 구두는 평소에 많이 닦았는지 윤이 잘 난다고 거듭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 청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끔 그 땀이 열심히 구두 닦는 동안 얼굴로 흘러내리기도 했다.

깨끗해진 구두를 신자 즉시 기분이 개운했다. 그 구두를 보며 나의 삶을 바라본다.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삶의 부분에 마음은 때가 묻고 맑은 두 눈은 흐려졌던가? 순수한 마음을 저 산 너머에 맡겨 둔 채 힘겹게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그 순수한 청년의 맑은 모습에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구두를 닦듯이 찌든 때를 한 겹 한 겹 벗겨 내고 그렇게 살고픈 마음이 인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조금 부족한 것들은 더 못한 것을 생각하며 눈과 마음을 크고 넓게 가져보리라.

구두 닦는 청년은 가진 것이라곤 플라스틱 상자와 구두약 몇 가지, 헝겊, 그리고 작은 오토바이뿐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다른 사람이 꺼리는 일을 하며 웃음이 가득한 얼굴, 그 넉넉한 마음이 아침 햇빛처럼 빛이 난다. 그보다 많이 가진 내가 그런 미소를 짓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요즈음 직업을 갖지 못해 헤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럴 때 내겐 그 청년의 구두 닦는 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식 손님들이 어느 정도 귀가하자 그 청년은 차분하게 도구들을 정리하여 플라스틱 통에 담아 오토바이에 싣고 분주하게 한강 대교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온종일 힘든 일과였지만 한 겹 허물을 벗은 느낌이었다.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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