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사업비를 폐지하라
재량사업비를 폐지하라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09.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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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재량사업비’라는 것이 있다. 자치단체 예산 중 지방의회 의원들이 임의로 쓸 수 있는 예산이다. 그런데 자치단체 예산항목에는 재량사업비라는 항목은 없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항목은 다르지만 대체로 ‘소규모주민숙원사업비’라는 명목으로 집행된다. 이 재량사업비는 각 자치단체마다 의원 한 사람당 연간 집행할 수 있는 액수가 다르다. 충북도의원은 연간 3억원~3억 5천만원, 청주시의원은 1억 5천만원, 충주시의원은 3~4억원, 청원군의원도 3~4억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고, 도내 다른 기초 자치단체 지방의원들도 재량사업비를 사용한다. 그런데 재량사업비의 책정은 자치단체의 인구나 재정규모를 감안한다는 등의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의 짬짜미로 책정된다. 그야말로 엿장수 맘이다.  

지난 6·4지방선거 이후 지방의회가 재구성됐다. 그런데 문제는 2014년도에 책정된 재량사업비가 없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전 5개월 동안 전 기수의 의원들이 연간 사용해야할 예산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새로 당선된 의원들이 추가로 재량사업비를 편성해 달라고 단체장을 압박했다. 이에 청주시는 의원 1인당 연간 1억 원의 재량사업비를 추가로 편성했고, 충북도는 1인당 9천만 원을 추가 편성했다. 만약 재선된 의원이라면 충북도의원은 4억여 원, 청주시의원은 2억5천만 원의 의원 재량사업비를 올 한해에 사용하게 된다. 충북도의 경우 연간 100억원이 넘는 2014년 재량사업비를 전액집행하고 추가로 28억원을 편성하게 된 셈이다. 연간 사용할 예산을 선거를 앞두고 5개월에 다 써버렸다는 것만 보아도 이 재량사업비의 용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2008년도 충북참여연대의 분석에 따르면 재량사업비는 대체로 도로정비나 하천정비, 공원체육시설, 경로당, 마을회관 건립 등의 사업에 주로 사용되었다. 지역 숙원사업이라는 명목이지만 이 정도 사업은 정상적으로 예산 편성하여 집행하는 것이 마땅한 사업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재량사업비를 사용토록 하는 것은 의원들의 생색내기용 선심성 예산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리고 계약방법은 수의계약이 약 80%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예산운용의 투명성 문제가 발생한다. 지자체의 예산 집행은 공개입찰이 원칙이나 재량사업비의 수의계약 비율은 턱없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의원이 지정하는 업체에서 공사를 진행하거나 지역구와는 무관한 지역에서 의원과 연관이 있는 사업을 선정하기도해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은 2011년 31개 지역에 대한 감사를 통해 의원의 재량사업비가 선심성사업으로 집행되고 있다면서 관련 예산이 선심성으로 집행되지 못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그리고 재량사업비의 선심성 사용에 대해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 또는 업무상 배임, 직권남용 혐의 등 실정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였다. 2012년 2월 행정안전부도 사실상 재량사업비를 폐지하라는 공문을 일선 시·도에 발송하기도 했다.

현재 의원 재량사업비를 집행하는 광역자치단체는 충북과 충남, 강원, 경북, 전남 등 5개 자치단체뿐이다. 나머지 광역 11개 단체는 이미 폐지하였거나 아예 재량사업비를 집행하지 않았었다. 일부 충북도 의원들은 떳떳하고 투명하게 재량사업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의원 재량사업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재량사업비의 태생이 정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도둑질하는 꼴이다.

어느 충북도의원은 말한다. 의원의 재량사업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에게 도지사의 재량사업비나 폐지하라고. 지방의원의 권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참 한심한 의원이다. 집행부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지방의원의 역할이다. 단체장의 재량사업비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의회에서 삭감하면 될 일이다. 단체장의 재량사업비를 핑계로 나도 쓰겠다는 의원들을 보면서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양심상 더 이상 재량사업비를 쓰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선언하는 지방의원이 충북에는 단 한사람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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