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지
오 탁 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먹겠네
시집 '벙어리 장갑'(문학사상사)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물봉선 핀 골짜기로 할머니에게 절 하러 간다. 얼굴도 모르는데 아빠는 자꾸만 할머니에게
가자고 한다. "얘야, 내 몸 속에 할머니가 계시는 거야" 오줌 마려워 죽겠는데, 이상한 말만 하면서 쉬지 않고 간다. 밤나무 아래에서 쉬를
한다. 굵고 힘찬 아빠의 오줌은 멋있다. 손오공의 여의봉으로 내 잠지를 툭 쳐서 커졌으면. 그래서 멀리멀리 나가 불도 끄고 세차도 하면 좋겠다.
얼른 어른이 되어 색시도 얻고, 나 같은 아들도 낳아야지. 근데 그때도 나 같은 아들을 데리고 또 다시 할머니 산소에 가야하나 아냐, 작아도
좋아. 쪼글쪼글한 고추가 되어도 좋아. 그런데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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