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90>
궁보무사 <19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3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서 나를 우리 장인어른께 안내하여라"
10. 쫓기듯이 달리는 자

"이놈! 천벌을 받을 놈! 감히 처녀를 농락하다니."

대번에 귀청을 찢어놓을 듯 아주 큰소리로 꾸짖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횃불로 환히 밝혀졌다. 양청은 머리가 완전히 빠개지는 듯한 아픔을 간신히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런!

지금 횃불을 집어 들고 그의 주위를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이웃 처녀 집에 있는 하인들이었다. 처녀의 아버지가 과년한 자기 딸이 한 밤중 위험한 산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기 위해 산신제를 지낸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급히 서둘러 이곳으로 하인들을 보내왔던 것이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에는 양청에게 뇌물을 미리 받아먹은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아니한 자들도 더러 있었다.

"어라 이 사람, 옆집에 사는 양청 총각이 아니야"

그들 중 양청을 알아본 자가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정말이네"

"아니, 이게 웬일이유"

하인들은 몹시 놀라는 표정으로 횃불을 그의 앞으로 바짝 들이대가며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양청은 기왕지사 이렇게 되어 진 바에야 좀 더 강하고 떳떳하게 나가는 편이 좋으리라 순간 판단을 했다. 그래서 양청은 옆집 하인들을 향해 큰소리로 호기 있게 외쳤다.

"야! 어서 나를 우리 장인어른께 안내하여라."

"으응 장인"

"장인이라고 하면"

옆집 하인들은 양청의 뜬금없는 이 말에 어이가 없는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허! 방금 보다시피 내가 너희 주인집 따님을 이렇게 차지해 버렸으니 나는 그 집 사위가 되어야만 할 것이고, 따라서 너희 주인어른을 내가 장인이라고 불러드려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양청은 조금 전에 몽둥이로 호되게 얻어맞아 머리가 빠개지는 것만 같은 아픔을 억지로 참아가며 다시 한 번 더 호기 있게 외쳤다. 주위가 하도 떠들썩하니 그제야 술이 깬 듯 세상 모르고 누워있던 두 처녀가 부스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로 이때였다.

"아이고! 얘야!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온 이웃집 처녀의 아버지는 귀하디 귀한 자기 딸을 포옥 감싸 안았다.

"장인어른! 염치가 없긴 하지만, 사위 양청이 삼가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양청은 지금같이 좋은 기회를 행여 놓칠세라 큰소리로 외치며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뭐 뭐라고 내가 장인"

처녀 아버지가 다소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양청을 빤히 올려쳐다보았다.

"그렇사옵니다.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긴 하오나 실은 제가 따님의 몸을 건드렸기에."

양청이 이렇게 말을 하며 거침없이 다음 이야기를 이어서 막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이웃집 처녀가 발딱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어머머! 아버님! 저는 이 남자한테 당하지 않았어요. 혹시 얘가 당했으면 몰라도."

"뭐, 뭐라고"

"저 사람이 뭔가 잘못 알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아니고 바로 얘가 당한 것 같아요."

이웃집 처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더니 바로 옆에서 엉거주춤 서있는 자기 여종을 앞으로 쭉 떠밀었다.

"아, 아니. 도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양청은 너무나 어이가 없는 듯 이웃집 처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당장 두 쪽으로 갈라진다고 해도 그렇지, 설마하니 양청이 조금 전에 관계를 했던 여자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거나 못 알아 볼 리 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