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행사 불참해도 괜찮다
집안 행사 불참해도 괜찮다
  • 박병찬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8.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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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의 세상읽기
박병찬 <칼럼니스트>

요즘 시골길을 가다보면 야산근처에 드문드문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벌초를 위해 조상묘지를 찾은 사람들 차량이다. 나 역시 최근 승용차에 예초기를 싣고 다니며 벌초를 했다. 땀 흘려 산에 올라 벌초하고 나면 그 어떤 의무를 다한 듯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곤 했다. 주말마다 산에 가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나이 들어가며 철이 든 것인지는 몰라도 벌초를 위해 산소에 가는 것이 즐겁다.

지난 주말에는 증조부 기일(忌日)과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겹쳤다. 제사를 지내려 가는 김에 벌초도 동창회 모임 참석도 가능해졌다. 하여 지난 주말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일단 동창회 모임에 참석했다. 삼삼오오 모여 세상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0여년이 넘는 중년이 되어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각자 살아온 인생길도, 생각에도 차이가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함께한 일부 동창들 간 의견 충돌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갈등이 서너 번 있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대화를 나누다가 충돌할 뻔한 적이 있다 . 졸업 후 처음 보는 한잔 한 어떤 동창과 대면한 자리에서 그랬다. 조금은 어색했던 자리였는데 대화과정에서 벌초 및 제사 얘기가 나오면서 그랬다. 나와 비슷하게 벌초 때문에 왔다가 동창회 모임까지 참석했기에 더욱 그런 듯했다.

이 동창 또한 여러 가지로 나와 생각이 달랐다. 특히 ‘벌초 및 제사 때는 형제들이 무조건 다 모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랬다. 사람마다 가치관이나 생활환경이 다를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에 계속 듣기만 하다가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듯해서 ‘사정에 따라 못 오는 형제들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잠시 난감했다. 결국 화제(話題)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의견 충돌 등 어색한 분위기는 모면했다.

잠시 자문해 봤다. 나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세상을 보는 잣대를 분명히 하고 일관되게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잣대를 강요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분명한 듯했다. 세상을 보는 내 생각(시각)이 다 옳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언행을 존중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돌이켜볼 때 그동안 내가 직접 책임을 져야할 일이 아닌 이상 타인에게 나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한 적은 없는 듯하다. 성년이 된 자녀들에게도 이래라저래라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부부간에도 좀처럼 간섭하지 않는다. 특히 자존심을 자극하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형제들 간의 문제도 자유의사에 맡긴다. 결혼 한 형제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집안 대소사에 불참해도 일체 말하지 않는다. 여건이 되는대로 하면 되고 ‘사정이 있겠지. 오죽했으면 오지 못했을까’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삶 자체가 그리 녹록지 않은 때인 듯싶다. 지금은 전국이 1일 생활권이라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집안 대소사에 매번 참석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성인이 된 가까운 친인척들에게는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고, 처자식을 책임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 또한 효도 중 효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최소한 명절 때 만큼은 부모형제와 함께 조상님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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