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을 만들며
돌계단을 만들며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8.25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나는 새벽에 풀을 뽑고 한낮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찬물에 발을 담그며 이 여름을 살아 내고 있다. 밭에는 일을 하다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마루를 만들어 놓았다. 마루에서 밭으로 내려가려면 1미터정도의 경사가 있다. 처음엔 오르내리면서도 불편한 줄 몰랐다. 그런데 며칠 지나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오르내리면서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다. 단거리로 다니려면 비탈을 이용해야 하고 아니면 돌아서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경사진 곳에 계단을 만들기로 했다.

비탈에 흙을 파내고 커다랗고 넓적한 돌을 올려놓았다. 밟고 올라서기 편안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밑에 잔돌을 받쳐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한 계단 만들어 놓고 올라 서 보고 또 한 층 만들고 그렇게 여섯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계단 옆으로 꽃잔디도 심었다. 나는 돌로 만든 계단이 예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여 자꾸만 오르내렸다.

우리는 계단을 오르며 아무 생각 없이 딛고 다닌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놓여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계단도 불편해 엘리베이터를 놓고 버튼만 누르면 오르고자하는 층에서 멈추는 문명의 혜택을 쉽게 누린다. 처음부터 잘 놓여진 계단을 편안하게 오르는 삶이 있는가 하면 비탈진 곳에서 출발하는 삶이 있다. 비탈길을 오르다보면 잘 못 디디거나 조금만 방심해도 미끄러져 내린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발끝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올라야한다. 힘을 주지 않거나 잠시 딴청을 부리면 지금까지 오른 것이 헛수고가 되기 일쑤다.

등에 짐을 잔뜩 지고 비탈길을 오르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저 힘든 삶에 발판하나 받쳐주면 쉬이 오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참 많다.

내 삶도 오랫동안 계단 없는 비탈길이었다. 미끄러졌다 다시 오르고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차례 겪으며 여기 까지 왔다. 이 십여년 넘게 오르내리며 무릎이 아파 울었던 날이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쌓으며 올라왔다. 지금은 편안하게 뜨락으로 오르고 뜨락에서 밭으로 내려온다. 계단 없이 올라가야 했던 내 지난 삶은 곡예를 하듯 불안하고 고생스러웠다. 힘겹던 날 누가 내 발 밑에 작은 돌 하나 놓아 주었더라면 쉽게 오르지 않았을까.

높지 않은 비탈이지만 그냥 오르내리려니 무척 불편했던 것이 작은 돌 하나를 받쳐놓고 디디며 오르니 한결 수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내가 만든 돌계단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이지만 나에겐 더 할 수 없이 요긴하게 쓰였다. 사는 것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과 같다. 한 계단 오르고 나면 또 한 계단 오르고 싶고 또 오르고 싶어진다.

지금은 새벽에 뽑다만 풀을 해질녘에 다시 뽑으며 하루해를 조용히 마무리하는 소중한 이 시간이 감사하다. 남편과 함께 계단을 쌓으며 엄청난 공사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고 또 보고 올라가 보고 내려가 본다. 완성된 돌계단을 물로 닦아내며 디디고 오를 계단이 없어 막막했던 우리부부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