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정은 조화, 그리고 우리는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정은 조화, 그리고 우리는 지금....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8.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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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이 정도가 되면 가히 교황 증후군이라고 할만 하다. 교황이 떠나고 나서 한동안 그 상실감이 어찌나 컸던지 현실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황이 머물던 4박5일동안 한국인들은 분명 색다른 경험을 했다. 선(善)과 사랑을 향한 의지가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삶에 대한 희망을 부여하는 지를 말이다. 적어도 교황의 인자한 미소 앞에선 그저 평안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어쨌든 이번 교황방문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갈망했는지는 세계를 놀라게 한 초유의 인파가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교황 맞이는 지금까지의 다른 나라와는 좀 색다른 면이 있었다. 종교적 염원 뿐만 각종 어지러운 나랏일에 대한 구세(救世)의 역할까지를 교황에게 바랐던 것이다. 특별법 통과를 주문한 세월호 가족이 그랬고 각각의 처지를 호소한 위안부 할머니와 쌍용차동차 해고노동자, 강정 마을 주민들이 그랬다.

교황에게 해결사적 전능(全能)을 기대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목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종교적 포용과 인간애를 전파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것에 근거한 ‘힘’의 현시(顯示)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세월호 사태로 인한 국가 리더십에 대한 이들의 불신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번 한국적인(?) 교황맞이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낳게 했다.

역사를 보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국가와 지도자를 향한 민중의 환멸은 거의 100% 정의감과 사명감에 불타는 철인 이른바 슈퍼스타의 출현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정의로움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이것 역시 거의 100% 반 인류, 반 역사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껏 기록으로 남아 있는 세기적 대학살은 대부분 이러한 슈퍼스타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히틀러가 그랬고 후세인 등 독재자들이 그렇다.

역사의 이런 필연을 이미 천년 전에 경고한 이가 있다. 소동파(蘇東坡)다. 그가 약관 22세에 응시한 과거시험의 답안에서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하여 잔인한 사람이 된다.”

노구를 이끌고 나라 곳곳에 인자함을 전파하려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종교적 지도자를 넘어 정의로운 철인까지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교황은 한국에 이런 어록을 남겨 본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보다 자비로움을 먼저 깨우칠 것을 설파한 것이다.

4박5일동안 교황의 한없는 인간애에 감동하면서도 정치와 나라에 대한 불신이 결국 또 하나의 응어리진 원한을 키워 교황에게 전달되는 아픔을 고통스러워 할 때 우리는 또 한번 난데없는 김정은 조화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우리의 통념상 조화는 조문하고자 하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보내 오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의 근간인 입법을 책임진다는 국회의원이 북으로 넘어가 황송(惶悚)의 예를 다하며 받들고서 가져왔다. 남북의 경색으로 정히 정상적인 전달이 어려웠다면 그 만만한 판문점을 통해서라도 인수했어야 옳다.

이것도 부족했음인지 김정은 조화를 국립현충원으로 들여놨다는 게 아닌가. 통일을 눈앞에 둔 완벽한 화해를 전제하지 않고선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적성 국가의 표상을 이런 식으로 호국영령의 경내로 영입한 것은 세계사를 봐도 없다. 매국행위나 다름없다. 남북화해의 전략적 단초로 삼으려 했더라도 이건 아니다. 현충원 외 다른 장소라면 모를까, 국가 정체성의 유린도 이런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그들에게 묻겠다. 김정은 조화의 방북영접과 현충원 전시가 박지원을 비롯한 특정 세력의 독단행위인지 아니면 야당의 합작품인지, 이것도 아니면 정부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교황에게 나라의 치부를 고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국민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면 김정은 조화의 현충원 등장은 아예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와 어린 아이들을 향한 교황의 끝없는 사랑, 그리고 어느덧 우리의 심장에까지 파고든 김정은의 그림자, 이 둘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이 나라 국민들.

지금 유민 아버지의 단식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유민 아빠를 감동시킬 국가적 믿음을 부활시키는 게 더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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