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나를 본다
지난날의 나를 본다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08.1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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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많은 날이 지났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말을 자주 하면 무슨 때가 되어 그런다고들 한다. 언짢은 말이려니 여겨지나 오래전부터 있는 말이다. 어쨌든 요즘에 이러한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빈번해 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다. 말이 씨가 된다는데. 이러다가 정말 잘못되는 것 아닌가 싶다.

밤을 지새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깊은 잠에 빠지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야지 하다가도 이내 손을 놓는다. 귀찮다는 생각이 앞선다. 한동안 소식이 끈긴 옛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야지 하고도 이내 잊는다. 생각뿐이다. 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다.

오래전부터 설계디자인, 강의노트작성 등 이런저런 과제를 하는 일에는 낮 시간대보다 밤 시간대에 많은 시간과 날을 보냈다. 늦은 밤 시간대에서부터 새벽 두세시까지 한밤중 시간대에는 생기가 넘쳐나고 강했다. 반면에 오전에는 약하다. 수면도 부족하고 체력도 달려 재직 시 오전 시간대에는 강의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옳다. 뚜렷이 갈 곳도 정하지 않고 그냥 집을 나선다. 집 근처 어린이 놀이터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본다.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동무들을 떠올린다. 지금쯤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을까 나를 보면 알아볼까 아니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느 날 책상 서랍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들추다가 낯설지 않은 사진 한 장을 집어낸다. 지난날 대학에서 강의할 때 강단에 선 나의 모습이다. 수강생이 몰래 찍어서 보낸 준 몰래 카메라다. 눈가에 약간의 웃음이 번진 나의 얼굴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든다. 적당한 크기로 확대된 사진을 액자에 넣어 책꽂이 위에 얹어 놓았다. 보기에 좋았다. 먼 훗날 지난날의 나를 보기 위함이다.

계절의 절기가 바뀔 때쯤 부는 바람은 가을의 그것과 같다. 검은 구름이 몰고 온 굵은 세찬 비가 쏟아지는 한여름 오후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한적한 길을 걷는다. 옷도 마음도 흠뻑 젖는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지난날의 아픔과 미련을 빗물에 씻겨 흘려버린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도 비우고 싶다. 모든 것을 지운다. 하늘이 멀어지고 어둠이 깊어진다. 

‘인생을 살아볼 가치로 만드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이는 바로 아름다움이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추리작가 아가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의 말이다.

양팔이 없는 장애아이의 실제이야기다. 해맑은 표정과 함께 밝은 미소를 지닌 앳된 얼굴의 미소년이다. 천사(天使)의 모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몽당연필을 움켜쥐고 글씨를 써가는 모습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조금은 힘들어하지만 잘 견뎌요.’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말이다. 조금 서툰 것이 아니다. 전혀 서툴지 않다. 조금 힘들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사람도 감내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낸 인내와 용기다. 무한한 가능성에 머리가 숙여진다.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또 있을까 더 이상 할 말을 잊는다. 거울을 닦는다. 지금의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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