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마음 붙들기
조심: 마음 붙들기
  •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4.08.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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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교수의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얼마 전부터인가 눈의 초점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눈에서 20센티미터 거리정도에서 잘 보이던 글씨들이 언제부터인지 어른거리고 선명히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먼 곳은 좀체로 잘 보이지 않는 근시인 내가 안경을 쓰고도 그 정도 거리가 안보이니 마음이 덜컥하였다.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둘 다 잘 볼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할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근시 안경을 벗고 글씨를 보니 환하고 또렷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내게도 이제 노안이라는 것이 온 것이다.

노안이 왔어도 논문은 읽고,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업인지라 눈을 비벼가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일을 한다. 간혹 답답하여 짜증이 난다. 높은 습도에 바람마저 뜨거워 그냥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요즘 더 힘이 들 때도 많다. 그러니 작은 일에 화를 내기도 하고 괜한 퉁명스런 말이 나가기도 하여 많이 조심한다. 글씨 안 보이는 것도 힘든데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까지 전염시키니 조심, 또 조심이다.

조심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불을 조심하라든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동차를 조심하라든가 하는 바깥 살피기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삼정승을 사귀지 말고 내 한 몸을 조심하라’는 속담 등을 생각해보면, 조심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잘 건사하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충북 출신의 정민 교수에 의하면 ‘조심(操心)’은 ‘잡다, 쥐다, 조종하다’는 뜻의 조(操)와 마음 심(心)이 합한 말로 원 뜻은 마음을 잘 붙들다, 즉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붙들어 주인이 되라는 말이라고 한다. 지금은 자신의 마음보다는 바깥 사물을 잘 살피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조심은 본래 ‘마인트 컨트롤’의 뜻인 것이다. 정민교수의 신작 ‘조심’은 우리가 몸의 욕망에 충실하여 몸이 원하는 바만 따르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은 툭하고 달아나 버린다고 경고한다.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잘 붙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의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에서 요술 구경을 했다고 한다. 요술쟁이는 콩알만한 환약을 키워 달걀만 하고 거위 알만 하게 만들더니 큰 동이만 하게도 만들었다. 사람들이 놀라 빤히 보고 있는 중에 어느새 그것을 어루만져 손안에 넣고 손바닥을 비비다 튕기니 그마져도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요술쟁이의 요술에 속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지만 번번이 요술쟁이에게 속아 넘어갔다. 수십가지 요술 구경 후 연암 곁의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아무리 요술을 잘하는 자도 소경은 못 속일테니 본디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늘 눈병을 앓았던 주자는 말년에 어떤 학자에게 준 편지에서 “좀 더 일찍 눈이 멀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고 썼는데, 이는 눈을 감고 지내자 마음이 안정되고 전일해져서 지켜 보존하는 공부에 큰 도움이 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마음을 붙잡는 데에는 가끔 눈을 감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들,  하루는 이 마음으로 하루는 저 마음으로 우리를 몰아 넣는다. 육신의 귀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에 일희일비하며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은 저만큼 달아나서 붙잡지 못하는 거리에 가 있을 지도 모른다. 더운 여름,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세상의 소리 말고, 고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봐도 좋을 듯 싶다.

미운오리새끼처럼 찾아온 나의 노안도 다시 생각해보니 고맙다. 노안, 멀리 본다하여 원시(遠視)라고 하던가. 모니터 속에서 답을 요구하며 커서를 깜빡이는 문서들은 멀리하고 마음의 소리를 가까이 하라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새삼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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