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 김장태 <충주보훈지청 보훈팀장> 
  • 승인 2014.07.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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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김장태 <충주보훈지청 보훈팀장> 

지난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지금부터 60여년 전 광복의 기쁨도 만끽하기 전에 같은 민족 간에 총부리를 겨누어 서로 목숨을 빼앗고 아름답던 산하를 피로 물들게 하며 3년여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됐던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포화가 한반도를 집어삼켰다. 개전 초기 한국군은 중무장한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열세한 병력과 빈약한 무기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쟁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간신히 숨만 붙이고 있었다.

전쟁발발 소식을 접한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히 소집하여 북한의 무력 공격은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라 선언하고, 결의안을 통해 '침략행위 중지 및 38도선 이북으로 철수'를 요구했으나 북한군이 이에 불응하자 2일 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회원국들에 대하여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 평화와 한반도에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내용으로 한 유엔군 사령부 창설의 법적 기반이 되는 '유엔 회원국의 북한군 격퇴 참여'를 결정했다.

곧이어 1950년 6월 29일 동경에 있던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MacArthur, D.S.)가 한국을 방문해 전선을 시찰한 후 미 국방성에 지상군의 파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미국은 1950년 7월 5일 최초로 스미스 특수부대를 오산전투에 투입하였다. 또한 UN은 7월 7일 UN군을 창설하고 7월 8일 UN군 총사령관으로 미국의 맥아더를 임명해 유엔군의 파견을 결정함에 따라 지구촌 수많은 나라가 한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국민 대부분은 6·25전쟁 시 우리나라를 지원한 국가를 전투부대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을 합한 21개국으로 알고 있는데 병력을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전시물자를 지원하거나 파병의사를 밝힌 나라들까지 합하면 총 63개국이다. 또한 미국 등 전체 유엔군의 이름으로 총 194만여명이 참전했으며 그중에서 4만여명이 전사했고 부상·실종 등 총 인명피해가 15만여명에 달했다.

UN군의 지원과 국군의 용전분투에도 전쟁이 장기화되자 우리 내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무력이 아닌 정치적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전쟁을 종결짓자는 휴전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이 열린 것을 시작으로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700여 차례가 넘는 각종 회담을 거쳐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양측 대표가 휴전협정서와 부속협정서에 서명하면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유엔군 참전·정전 60주년을 맞이해 최초로 UN참전 27개국 정부대표를 초청, UN참전국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감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는 인식과 의미제고로 국내외 참전용사와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지난해 7월 관련법을 개정해 6·25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국가기념일인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하고 정부기념행사를 거행했다.

이를 계기로 국민, 특히 젊은 청소년들이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6·25전쟁 중 대한민국을 지켜준 유엔 참전 군인과 국내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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