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셋,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길은
예순셋,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길은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07.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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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道者(도자)는 萬物之奧(만물지오)니 善人之寶(선인지보)요 不善人之所保(불선인지소보)니라.

美言(미언)은 可以市(가이시)하고 尊行(존행)은 可以加人(가이가인)이나 人之不善(인지불선)을 何棄之有(하기지유)인가

故(고)로 立天子(입천자)에는 置三公(치삼공)인데 雖有拱璧(수유공벽)을 以先駟馬(이선사마)라도 不如坐進此道(불여좌진차도)니 古之所以貴此道者何(고지소이 귀차도자하)인가 不曰(불왈)로 以求得(이구득)이요 有罪(유죄)라도 以免邪(이면사)아니던가 故(고)로 爲天下貴(위천하귀)니라.

 

- 도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그윽함이니 제대로 사는 이의 보물이요, 제대로 못 사는 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은 저잣거리에서 통하지만 품격있는 실천은 다른 이에게 보탬이 되는 것, 사람이 못 미친다 하여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제왕을 세울 때는 신하 셋을 함께 두는 것, 비롯 받들어 올리는 보석이 큰 수레에 가득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이 가르침에 나아가는 것만 못하니, 옛적에 이 가르침을 귀히 여긴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말하지 않고도 구하는 것을 얻고 지은 죄도 면하게 하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므로 세상 모든 것을 귀하게 했던 것이다.

 

한문을 읽을 때 겪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문장을 해석하려 하는데 거기에 사람이나 땅의 이름이 생략된 채로 끼어 있을 때 그것까지도 뜻으로 생각하게 되면 이건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경우입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문장에 쉼표라는 것이 없으니 어디를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전혀 엉뚱한 풀이를 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 오늘 본문 또한 어디를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풀이를 할 수 있는 그런 문장으로 되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모든 존재는 道(도)라고 하는 그 존재의 본질, 또는 근원이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태생적으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 바로 奧(오)라고 나는 읽습니다.

세상사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법. 그러니 일단은 모두를 귀한 존재라고 볼 줄 알아야 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데 좋은 것만 앞에 쌓아두려 한다면 위험이 뒤따른다는 겁니다. 예로부터 소중한 가르침을 현실적 이익보다 더 귀히 여긴 까닭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볼 줄 아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천박한 속물근성은 언제나 좋은 것은 가까이 두려 하고 싫은 것은 무조건 멀리 하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졌으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창구를 여는, 곧 置三公(치삼공)을 하려 하지 않고 숨기고 있는 욕심을 채우려고 온갖 선물이나 뇌물을 갖고 들락거리는 사람만을 선호합니다. 거기서 참으로 곁에 두어야 할 것들은 내쳐지거나 소외될 수밖에 없고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습니다. 그저 혼란과 고통, 그리고 비극들이 거듭되는데 그럼에도 좋은 것만 계속해서 곁에 두려 하다가는 결국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아무 것도 버려지거나 놓치는 것이 없는 삶, 그렇게 사는 길에는 때로 아름다운 불편도 껴안고, 더러운 영예를 볼 줄 알아 그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하니,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길이 바로 거기서 열리더라는 말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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