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이 내리던 날
우박이 내리던 날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6.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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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요즈음 우리 동네 최대 이슈는 우박에 대한 이야기다. 며칠 전 우박이 떨어지면서 인근의 농가에 피해가 많았나 보다. 우박이라면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피해 사례를 본 게 전부인 만큼 인근 마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엊그제 작업복 차림으로 행사장에 나온 친구는 얼굴만 보이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때 아닌 우박이 고추, 참깨, 옥수수 등 모든 것을 초토화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밭에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일껏 심어 가꾼 농작물이 잠깐 새 꺾이고 부러졌다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자실해 있을 농민들의 심정을 알겠다.

그 날 경기도 일산에서는 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토네이도가 1시간 동안 불어 인근을 지나던 노인이 날아온 파이프에 다쳤고 경운기는 논바닥에 처박히고 화훼용 비닐하우스 21동이 무너지는 일도 일어났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살기 좋은 나라라고 배워 온 것을 생각하며 당혹스러웠다. 근래 기상청은 연신 기상관측사상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며 보도를 하고 있다.

2013년에는 기상관측사상 가장 긴 장마가 이어졌고 2012년에는 서울의 적설일수가 최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계속되고 여름은 반세기 전에 비해 20일 정도 늘었으며 호우경보는 20년 전보다 60%나 증가했다. 특히 국지성호우와 집중호우가 증가해서 이변과도 같은 이상 기후 때문에 겪는 불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도 4월부터 시작된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이어져 봄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여름옷을 몇 달째 입고 살아야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순차적으로 피던 꽃들도 순서를 어기며 피어났으나 그만치 바뀐 환경을 생각하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심히 살고 있다. 세상이 변한다는 게 얼마나 가공할 일인지를 모른 채, 아울러 그 모든 게 과학 만능 시대의 환경적 요인이라는 걸 잊은 채 별다른 자각 증상 없이 살고 있어 더욱 두렵다. 세상이 변해 간다는 말은 어릴 적 할머니 때부터 들어왔고 이제는 진행이 아닌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살기 좋고 편리하게 변해 갈수록 자연환경은 몸살을 앓고 있는데 우리는 편리함만을 즐기고 있는 듯해 더더욱 안타깝다.

가끔 단체를 통해서 녹색소비실천이라는 교육을 해 보면 다 아는 이야기라고 재미없어한다. 그래서 실천해 본 것이 뭐가 있느냐 물으면 약속이나 한 듯 대답이 궁하다. 그보다는 역으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또 대답할 말이 있을까 싶어 오히려 답답했다. 세상은 늘 양면성이었다는 게 두려운 섭리처럼 다가온다. 풍족한 게 많으면 무리수도 그만큼 가중된다. 편리한 만큼 그에 따르는 재난도 감수해야 된다면 불편한 삶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어야겠다.

그렇다고 발달한 과학을 되돌려 놓는 건 무리일 테고 단지 현재 누리고 있는 문명 기기의 사용을 절제했으면 싶다. 현재의 기상이변도 가공할 일이거니와 여기서 더 나가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여건에 처하고 만다. 병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으면 그런 대로 살 수 있는 것처럼 병들어가는 자연일지언정 악화되지 않게 보듬는다면 더 이상의 기상 이변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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