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품고 최선 다해라 단순한 가르침속 진리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꿈 품고 최선 다해라 단순한 가르침속 진리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4.05.07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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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잊을 수 없는 선생님
방황하는 제자 위해 자기 희생 … 따뜻한 손 내밀어

노력·실천하는 삶의 의미 가르쳐 … 인생의 멘토로

훌륭한 인물 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 시각장애인인 헬렌 켈러도 그의 스승인 앤 설리번으로부터 “너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단다”라는 말을 들은 뒤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했다. 이순신 장군도 처음부터 영웅은 아니었다. 그를 전략가로 만들어준 제갈공명이 있었고, 이기는 전략을 가르쳐준 손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말한 오자도 이순신 장군의 멘토였다. 오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잊지 못할 선생님을 기억에서 꺼내볼 시간이기도 하다.

◇ 김훈일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말보다 몸으로 사랑을 실천”

김훈일 신부는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음성 무극중학교 시절 3학년 담임인 정필윤 교사를 떠올렸다. 정필윤 교사는 고입연합고사를 앞둔 제자 54명을 위해 직접 깎은 연필과 노트, 지우개를 선물했다. 검지가 불편했던 선생님을 향해 제자들은 별명을 부르며 놀렸지만 정 교사는 불편한 손가락으로 일일이 제자들의 연필을 깎았다.

김 신부는 “아픈 손가락으로 연필을 깎았다고 생각하니 친구들 모두 감동받았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며 “선생님을 놀렸던 아이들이 그 일을 계기로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은사로 김 신부는 대전가톨릭 대학교 정영규 총장 신부를 꼽았다. 김 신부가 기억하는 정영규 총장은 가장 작고 오래된 경차를 타고 다녔고, 숙소에는 양말 세 켤레가 전부였으며, 오래된 양복을 매일 입고 다닐 만큼 검소했다. 사제의 길을 걷겠다는 제자들을 위해 정영규 총장은 지식과 학문을 쌓는 것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삶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낫질, 호미질, 빗자루질,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김 신부는 “정필윤 선생님과 정영규 총장님은 말로 하는 사랑보다 몸으로 직접 사랑을 실천한 은사였다”고 밝혔다.

◇ ㈜JBL 이준배 대표이사… “현실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라”

이준배 대표이사는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박준태 교장을 잊을 수 없다. 가난한 8남매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대학이 아닌 공고로 진학한 이 대표를 기능훈련선수로 발탁하고 꿈을 심어준 이가 바로 박준태 교장이었다.

박 교장은 아무런 계획도 없고 방법도 모르면서 막연히 꿈만 좇던 이 대표에게 “지금 처해있는 현실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라”라는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타고난 약점은 약점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강하게 만들어준 밑천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준 말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특성화고에 입학해 기능훈련 선수가 되면 취업이 잘된다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기능훈련선수 모집에 응시해 기계제도 기능훈련 선수로 선발됐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했던 시절이었다”며 “박준태 선생님은 힘들어하는 내게 처해 있는 현실을 불평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다보면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박준태 선생님의 조언대로 처해 있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이준배 대표는 현재 중견기업의 CEO가 됐다.

이 대표는 “박준태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은사님의 말 한마디는 제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송향금 청주 솔밭중 교감…“꿈을 가져라”

송향금 교감은 내수중학교 시절 성악가의 꿈을 심어준 전 옥산중학교 정옥저 교장을 잊지못할 선생님으로 꼽았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요양을 위해 시골 생활을 했던 송 교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잘했다. 단지 잘할 뿐 성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옥저 선생을 만나면서 마리아칼라스처럼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꾸게 됐다.

송 교감은 “초등학교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성악가의 꿈을 갖지는 못했다”며 “정옥저 선생님을 만나면서 성악의 기초부터 발성체계까지 기본을 익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옥저 선생은 14살인 제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 연습을 시키기도 했다. 인생의 멘토로 정옥저 선생을 떠올린 송 교감은 “선생님은 늘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해주셨다”며 “마리아칼라스처럼 성악가의 꿈을 키워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하라고 권하셨다”고 말했다.

성악가의 꿈을 접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송 교감은 충북예술고등학교 재직시 은사인 정옥저 선생의 딸을 지도한 인연까지 갖고 있다.

송 교감은 몇 해 전 만난 정옥저 선생님에게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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