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우아한 거짓말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4.03.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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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교복을 입던 시절,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올망졸망 모여 있으면 구분이 되지 않았을 만큼, 같은 옷에 같은 머리스타일을 가진 그런 아이였다. 게다가 눈에 띄게 공부를 잘 하지도 않았으며, 눈에 띄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사소한 그 무엇인가에 매달려, 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양 마음 아파하기도 하던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10대의 나는 친구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아이였다. 혼자 무엇인가를 하면, 왕따처럼 보일까 봐 섣불리 시작을 하지 못했고, 외톨이가 될까 봐 새 학년이 시작할 때쯤은 친구 사귀기에 모든 집중을 기울였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고, 오히려 같이 하면 이상한 것들을 혼자서 못해 어려워하곤 했다.

그땐 나만 그런 모습인가 싶어 속상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다른 소녀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생각들이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누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10대를 보냈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10대의 기억을 가진 나는 도서 ‘우아한 거짓말’(김려령 저·창비)이 편하지만은 않다.

특히 곱씹어서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죽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죽었다.”라는 말과 “내일을 준비하던…” 말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극이 크다. 어디에도 죽은 천지의 말은 없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과 죽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이 체증처럼 느껴져, 다 읽은 지금에도 시원하지 않다.

책 제목도 우아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거짓말이 우아하단다. 누구를 위해서 우아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걸까? 늘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던 화연이의 잘못일까? 알면서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괜찮은 척 거짓말을 했던 천지가 우아한 것일까? 아니면 힘든 것을 알면서도 나아지겠지 하면서 애써 넘기던 엄마의 고단한 삶이 거짓이었을까?

따돌림과 청소년 자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짐짓 태연하게 문학비평가처럼 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 곳곳에서 등장인물이 가진 마음이 다 아파서, 편하게 평을 할 수가 없다. 용서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은 아이에게 전해진 용서가 신경 쓰이고, 새로 이사 간 집에 있는 쥐가 싫지만 굶어 죽는 것이 싫어 사과를 밀어 넣어 줬던 엄마의 마음이 뭉클하고 동생이 죽고 나서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아이가 아프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하고 산다. 점심을 먹을지 말지와 같은 사소함에서부터 살지 말지와 같은 끝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거짓말도 선택이다. 늘 진실 되어야 함을 강요할 수도 없다. 때론 남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고 위안 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은 모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 어디에도 우아한 거짓말은 없다.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200쪽도 안 되는 성장소설 한 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만든다.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하고, 반성하게도 한다. 마음이 어지럽고 생각도 복잡하지만 한 가닥 한 가닥 빨간 털실 뭉치를 풀고 있는 기분이다. 이걸 풀고 나면, 천지가 보내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나한테는 어떤 용서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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