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한 참 일꾼
나라를 위한 참 일꾼
  • 반영억 주임신부 <음성 감곡매괴성모성당>
  • 승인 2014.03.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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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반영억 주임신부 <음성 감곡매괴성모성당>

살아가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이다.

그런데 높아지려고 하다가 하루아침에 낭패를 보는 사람이 많다. 욕심은 끝이 없어서 만족시켜 주면 줄수록 그 욕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높아지려다가 오히려 명예를 일고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들이 ‘높’자를 거꾸로 하면 ‘푹’자가 된다는 것을 생각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에 일찍이 공자께서는 “남의 선생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탈”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망친다고 경고 한 것이다. 그러니 높아지려고 애쓰며 남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삶으로 말해야 하겠다.

나라를 위한 봉사의 꿈을 갖고 6월4일 치러질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으니 환영할 일이다. 그들이 백성으로부터 참으로 환영 받기를 희망한다.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넉넉해지고 자상한 어른이 되어야 하거늘 선거철만 지나면 힘을 쓰려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높아지려고 하는 몸부림, 대접 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 길을 서슴없이 가는지 안타깝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고 백성을 위한 참된 봉사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성경을 보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스승이요, 지도자로 행세하고 남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사실 권위는 자기가 내세우기보다 남들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권력과 권위는 분명 다르다. 권력은 위로부터 행사되는 것이지만 권위는 아래로부터 부여되며 권력은 직책에서 나오지만 권위는 능력에서 나온다. 권력은 복종을 요구하지만 권위는 존경심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권력을 가졌어도 권위는 살 수 없고, 권력의 힘은 없으나 권위를 가져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도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에 대해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셨다.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드러내거나 선거철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기 보다는 진실하고 신뢰성 있는 행동으로 권위를 지닌 지도자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백성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할 수 있는 봉사자, 누가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인사할 수 있는 지도자, 누구에게 무엇을 시키기 보다는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를 바란다면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일까?

자신의 이익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때로는 자신이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약한 사람 편에 서서 바른 말을 할 줄 알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강하게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도리(道理)와 무엇을 기대하기보다 먼저 베푸는 덕목(德目)을 품었으면 좋겠다.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힘이 있었고, 한 마리는 약했다. 힘센 강아지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왕, 왕, 왕”짖었다.

그러자 약한 강아지가 “킹, 킹, 킹” 하면서 도망을 갔다고 한다. 누구나 다 왕이 되고 싶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높은 사람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마음이 큰 사람을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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