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꽃샘추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3.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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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산책을 나선다.

볼에 닿는 바람이 차갑다. 내 등 뒤로 내리는 봄 햇살에 마음이 상쾌하다. 모처럼 구름 없는 3월 하늘에 봄이 머문 듯하다. 청주예술의 전당 광장옆 조릿대언덕 잔디 틈새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외롭게 피었다. 이른 봄에 처음 만나는 봄소식이기에 정겨움이 더하다. 도툼하게 자란 쑥을 보니 봄맛이 듬뿍 담긴 쑥국이 생각난다. 봄냄새와 함께 저절로 입맛이 돋는다.

자연 속엔 어느덧 봄이 가까이 다가와 소리 없는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마른 가랑잎 사이로 내민 초록빛 싹에 눈곱만한 봄까치 꽃이 파랗게 피었다. 너무 작아 허리를 굽히고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몸을 낮추어야만 그들과 눈 맞춤을 할 수 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봄 햇살에 조금씩 펴며 봄맞이를 한다. 어찌 그렇게 자연은 틀림이 없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봄의 속삭임을 시샘이라도 하듯 느닷없이 꽃샘추위가 날아들었다. 갑자기 다가온 추위에 사람들과 이제 막 봄을 맞으러 나왔던 꽃들도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마당의 수돗가 함지박에 담긴 물에도 살얼음이 얼었고 갓 피어난 꽃들도 작은 몸을 오그려 그 추위와 겨룬다. 해마다 거르지 않는 봄에만 있는 자연의 섭리이다.

꽃샘추위는 이른 봄철의 날씨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듯이 일시적으로 갑자기 추워지는 기상현상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의 봄철에만 나타나는 기이한 날씨라고 한다.

며칠 전에 지인들과 함께 냉이 캐러갈 약속을 했다. 동심으로 돌아가 봄기분을 내고 싶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으리라. 날짜까지 정해놓고 손꼽아 기다렸다. 그동안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우리의 약속을 시샘이라도 하듯 그날은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로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많이 아쉬웠다.

둘레길 벤치에 앉아 기둥만 보이는 숲의 나무를 바라본다.

지난해 미처 지지 않은 마른 잎들이 바람에 파르르 떨며 매서운 꽃샘추위를 말없이 견디고 있다. 말 많은 우리와는 달리 묵묵히 숲은 자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때를 기다리며 그 고난을 이겨낸다.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만큼 그 대가는 비례한다. 이 추위가 지나가면 지금 잎이 붙어있는 자리에 새순이 돋아 마른 잎은 힘없이 땅에 떨어져 나무의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매일 오가는 산책길에 시나브로 변하는 계절과 자연,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모습과 들풀들. 추위와 더위, 그 모진 고통을 견디며 우리들과 공존하고 있다. 나의 감정의 변화를 모두 받아주고 새 희망을 품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어찌 꽃샘추위가 계절에게만 있겠는가. 우리네 인생길에도 그런 시련이 다가와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하는 경우를 본다. 요즈음 매스컴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우리들이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결과로 생각되어 마음이 아리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살고 있는 우리들의 해야 할 몫이 아닌가.

자연은 그 어떤 고통도 말없이 인내하여 이겨내며 기다림으로 생명을 이어나간다. 자연처럼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삶을 닮아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따뜻한 봄날이 고운 꽃을 피우듯, 우리 삶의 언저리에도 어려움을 조금씩 서로 나누며 사는 작은 마음의 꽃을 피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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