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4.02.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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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달라지듯 책도 여러 장르를 좋아했다 싫어했다 했지만, 글에 매혹되어 초등학생 때부터 책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책을 계속 읽긴 했지만, 가장 많이 읽은 시기는 의외로 고등학생 때였다. 수능시험 준비로 3년 내내 공부만 했을 그 시기에 나는 가장 열렬한 독자였으며, 서점을 가장 많이 방문한 때였다.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어느 작은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리스트였다. 그 리스트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남모를 성취감에 혼자 도취해있었다. 물론 그 작품들이 수능에 문제로 나올 것이며, 필독서라는 것이 공부하지 않고 독서하는 내 자신을 위한 어쩌면 핑계가 되었다. 그 때 읽어댔던 수많은 고전문학들을 나는 과연 제대로 이해했을까? 지금의 나이가 돼서도 고전문학은 가끔 벽을 보고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요즘 들어 다시 고전 읽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전이 왜 고전이 됐는지, 알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제대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대 소녀가 읽어 내렸던 그때와는 다르게 조금 깊이 읽는 독서를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런 연유로 읽게 된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저/윤지관·전승희 공역/민음사)은 올해 읽은 첫 번째 고전작품이다. 이 책은 18세기 산업혁명이 있던 영국을 배경으로 그렇고 그런 집안의 딸이 귀족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는 연애소설이다. 그 당시 시대가 잘 반영되어 있으며,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풍자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라는 것이 평단 평가이다. 하지만 나는 영국의 그 시절 따위는 관심이 없다. 주인공 디아시와 엘리자벳 베넷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연애 이야기에 더 마음이 홀린다.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지루했을 법한 문장들이 그렇게 쫄깃할 수 없다.“나는 당신의 오만함이 싫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좋아한다는 것인지, 아닌지 독자와 줄다리기하는 것 마냥 문장들이 춤을 춘다.

오해가 풀리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이 책을 지금 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다. 겨우 문자를 읽어내던 10대 소녀였을 때보다, 지금이 단어와 문장과 문단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가슴에 새겨진다. 고전을 읽을 땐 나이 듦이 좋아진다. 이래서 고전인가보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많은 고전들도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각색되고, 읽혀진다. 하지만 고전은 조금 옆에 두고두고 읽어봤으면 좋겠다. 너무 이른 나이에도 읽지 말자. 한 권 한 권 읽어가고, 지나온 세월에 따라 읽혀짐이 달라지듯 그렇게 함께 나이가 들고 읽었으면 한다. 나는 지금 다음 친구가 되어줄 고전을 고르고 있다. 이 선택의 순간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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