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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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4.01.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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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겨울 햇살은 보약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의 유혹을 떨칠 수 없어 모처럼 문밖을 나섰다. 동네 시장 입구를 지나치려니 길옆에 펼쳐진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수세미, 목욕타올, 빨래집게 등 생활용품들이 길을 따라 즐비하게 진열돼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물건들은 비싸야 2천~3천원이다. 목욕타올을 고르고 있는데 노점상인인 듯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어느 남성과 나누는 대화에 귀가 쏠렸다.

“자네, 이젠 밥 먹고 살만하니 그리운 게 없을 터인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 많나?” 자신의 친구가 부러운 듯 노점상인이 말을 꺼낸다. 그러자 주머니에 한쪽 손을 찌른 채 노점상인의 이야기를 듣던 남성이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 살며 만족이란 게 어디 있나. 남 보기에 성공한 것 같지만 아직도 난 그리운 게 많다네.”

그러더니 대뜸 그는 노점상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넨 무엇이 그립나? 물론 생활이 어려우니 돈이 아니겠나?”

그러자 노점상인은 갑자기 손사래를 친다.

“물론 자네 말처럼 돈이 늘 그립지. 그러나 난 돈보다 더 그리운 게 있다네.”

돈보다 더 절실한 게 있다는 노점상인의 뜻밖의 말에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일어 바짝 귀를 세웠다.

“난 몇 해 전에 작고하신 나의 고등학교 스승님이 참으로 그립네. 그 분만 살아 계셨더라면 오늘날 내 신세가 이 모양이 안됐을 텐데….” 라며 한숨까지 내쉰다. 그러더니 노점상인은 자신이 지난날 사업을 할 때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사업을 하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스승님께 조언을 구하면 스승님은 늘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사업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스승님의 말을 지팡이 삼아 일어서곤 했단다. 이젠 그런 스승님이 세상을 뜨자 자신의 어려움을 하소연 할 곳이 없다고 했다. 한창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더니 자신이 사업에 실패하자 전화마저 받지 않는 친구들이 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고 했다.

노점상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의 스승님이 존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훌륭한 스승님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노점상인이 무척 남다르게 보였다.

그들의 대화에 문득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즈막히 소리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즈막히 소리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즈막히 소리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날이 갈수록 삶은 각박해져 인간관계마저 물질로 눈 저울질하기 예사인 세태다. 그러기에 남다른 제자 사랑을 실천한 스승님을 심중에 모시고 있는 노점상인이 부럽고, 스승님을 향한 변함없는 존경심을 갖고 있는 노점상인이 무척 돋보였다.

세상을 살며 절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적 있던가.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뼛속까지 저릴만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행복 중에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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