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그렇듯 쉽게 내는 게 아닙니다
책은 그렇듯 쉽게 내는 게 아닙니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 승인 2014.01.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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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올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세몰이가 한창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 출마를 앞둔 사람들의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다.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책 판매대금을 부수입으로 건질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안에만 하면 출판물의 금액, 모금액, 출판기념회 횟수 등 어떠한 것도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가 정치인이나 정치 후보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충북에서도 여러 인사가 출판기념회를 했고, 가질 계획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은근슬쩍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지만 법이 그러니 굳이 탓할 바도 못되고 어쨌든 출판하는 책의 두께만큼 내용도 알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11월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초청을 받았다. 가서 보니 출판기념회라는 말이 면구스러울 정도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최소한의 인원만 초청했다. 책을 출간한 지는 몇 달 되었다. 애당초 출판기념회는 염두에 두지 않고, 지인에게 책을 건네며 읽어보라고 한 것이 화를 불렀다. 몇몇 사람이라도 불러 조촐하게 기념회를 해야 한다는 협박에 마지못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을 알았다. 많아야 20여 명 모였지만 그곳에 참석한 인사들은 책을 출간하는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등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심전심 눈빛만으로도 생각을 읽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이 초대받았다. 거피 한 잔 마시고, 주인공 내외가 앉은 자리에서 지인들이 나와 출간된 시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낭독을 했다.

초청받은 서예가는 즉흥적으로 붓을 들고 일필휘지(一筆揮之) 글을 써내려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한국화를 그리는 이는 순식간에 아름다운 꽃을 화선지에 옮겨 담았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자리는 즐거웠고, 의미는 충만했다. 조촐하지만 궁해 보이지 않고, 여백으로 남는 공간은 넉넉한 덕담과 웃음이 자리를 메웠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의 면모도 그렇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자리를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렸다.

가끔 책을 선물로 받는다. 자기 생각을, 그것도 잘 아는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 줄 알기에 한 줄도 허투로 읽지 않고 새겨 읽는 편이다. 아는 사람의 책은 참 편하다. 읽는 내내 그 사람의 얼굴이 책 페이지에서 떠나질 않는다. 책은 눈으로 읽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의 생김새, 살아온 이력 등을 행간으로 삼아 읽는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읽힐 책하나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다. 책의 내용보다 책 출간을 매개로 사람을 모으고, 힘을 과시하는 유명인의 출판기념회와 확연히 다르다. 전자책이 일반화되고, 인문 서적보다는 자기 계발서나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편식처럼 팔리지만, 지인이 쓴 시집이나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책을 읽는 것만 못하다.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다수이고, 한참 문학서적으로 심신을 담금질해도 모자랄 청소년은 문제집에 매몰되어 있다. 공자는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男兒須讀 五車書) 다섯 수레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책은 죽간(竹簡)으로 대나무를 쪼개 만든 면에 글을 쓴 것이니 오늘날 책으로 계산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의미는 요즘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읽는 것을 넘어, 마음만 먹으면 책 한 권 뚝딱 만들어내는 세대다. 그러나 쉽게 쓴 글의 생명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풀어쓴 시시껄렁한 책보다 속살처럼 감추고, 마음고생을 하며 오래 삭힌 책 한 권 선물 받아 읽는다면 정월의 기나긴 밤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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