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충다리의 울력걸음이라도
봉충다리의 울력걸음이라도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4.01.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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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새해를 맞는 설렘도 없고 희망을 갖기도 어려운 시절입니다. 상식이 사라지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가치가 뒤집힌 세상에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 지경입니다. 안녕들 하시냐고 묻는 대자보가 삽시간에 유행하는 것은 이런 세상의 반영입니다. 급기야 극단의 방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국가적 정의를 부르짖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밀양의 어르신들은 결코 어버이연합의 어르신들보다 이 나라와 민족의 역사 앞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국가 권력은 한쪽의 범죄행위에 대해 참으로 너그러운 반면 밀양의 어르신들에겐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분신한 청년은 댓글 알바생보다야 훨씬 건강한 삶을 살았을 텐데도 국가권력은 그의 삶과 죽음조차 비하하려고 합니다.

연말에 공중파 방송들은 화려한 시상식을 몇 시간에 걸쳐 방송했습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건강한 드라마에 출연한 이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귀신 이야기나 꼬이고 꼬인 남녀 이야기나 재벌의 숨겨진 자식 이야기에 출연한 배우들만이 자리에 가득했습니다. 앞으로 불의에 맞서고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공직자나 백성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역사 속에 가려졌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찾아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다큐멘터리를 앞세워 시청료 올려달라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된 새해 맞으시길 기원하는 새해인사를 차마 올리지 못하고 비통한 마음을 지면에 채워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희망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늘 힘들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 올렸습니다.

영국의 헨리 포세트는 사냥을 갔다가 아버지의 실수로 엽총에 양쪽 눈을 다 잃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원망과 절망 가운데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이 일 때문에 비탄에 빠져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헨리 포세트는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절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옛날 품었던 포부를 다시 가진 것 같이 부지런히 무엇인가 했습니다. 기쁜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속마음과 달리 가장해서 살아 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로 그렇게 되어간 것입니다. 결국 국회의원이 되고 나중에는 체신부 장관의 자리에 올라 나라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희망을 가지고 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면, 희망을 가진 척이라도 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생활하다보면, 정말 희망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봉충다리의 울력걸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봉충다리)도 여럿이 함께 기세 좋게 걷는 데 끼면 절뚝거리면서라도 따라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도 여럿이 어울려서 하는 일에는 한몫 거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통사회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무보수로 남의 일을 도와주는 협동방식을 ‘울력한다’고 합니다. 문경지방에서 행해졌다는 ‘우살미’ 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보수를 바라지 않고 남의 일을 돕는 일을 말합니다. 울력은 두레나 품앗이, 고지, 부역과 같이 협동노동이기는 하지만 보수 없이 자원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다릅니다. 일손이 모자라는 편부모가정이나 환자가 있는 집, 초상을 당한 집과 같이 어려운 사정으로 노동력이 모자라는 집의 일을 울력으로 도왔습니다. 일의 종류도 일정한 시기에 집약적인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파종과 수확, 지붕이기, 장례절차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참 답답한 현실이 새해에 계속될지라도 억지 희망이라도 가지고 사십시다. 이 사회의 물구나무 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봉충다리 울력걸음이라도 보태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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