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없어졌다
지역이 없어졌다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11.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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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한 일간지에 주주 및 독자모임이 있었다. 신문사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대표자로 초청받아 의견을 제시한 일이 있다. 지역 주재기자 제도를 없애고 지역 소식은 통신사의 뉴스를 받아 싣는다는 계획이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탓에 어려워진 경영 상황이 호전될 것이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지역 뉴스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분들이 계셔서 형편이 어려워도 지역 주재기자 제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천편일률적인 눈으로 지역을 보게 되고, 지역의 다양한 특성이 사라진 수도권의 부속물처럼 지역이 취급될 일이었다. 유력지들이 지역주재기자를 없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런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일 교육부는 ‘지방대학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2015년부터 지역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지역대학의 의대나 로스쿨과 같은 인기 학과에 진학할 때 지역인재전형을 하도록 했다. 고급 공무원 선발시험에서 지역인재할당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지방대 특성화사업비로 5년간 1조원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교수신문은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지방대 특성화 사업은 단순히 특성화 분야 육성 사업이 아니라 지방대 구조조정을 위한 사업이라고 한다. 대학평가를 통해 강제로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대학구조개혁 방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들은 정부의 정책이 ‘지방대학 죽이기’ 라며 반발한다. 과거 대표적 지방대 육성 사업이었던 ‘지방대학혁신 역량강화(NURI) 사업’이 2009년 종료된 후 ‘교육역량강화사업’에 흡수됐다. 다시 이번에 ‘지방대 특성화 사업’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라고 비판한다. 지방대 입장에서 보면 과거 누리사업보다 오히려 예산이 줄었다고 생각한단다. 약간의 재정지원으로 정원을 감축하면 장기적으로 수입이 줄어들고 계속해서 등록금 인하압력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지방 사립대는 난색이다.

정부와 학교의 입장을 떠나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대학이 순수예술학과나 기초학문분야를 폐지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교육부의 평가지표를 맞추기 위해 국악이나 음악 관련학과, 회화학과 등이 지역에서 사라진 경험이 있다. 도내 대학 중에 철학과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같을 것이다. 독일어를 배울 수 있는 곳도 도내에는 없다. 다른 대학에 비해 우위에 있는 분야만 키우라는 이 정책은 지역의 다양성을 더 급속도로 파괴할지도 모른다. 비록 지역이지만 다양한 문화와 학문을 갖추고 있던 우리 지역은 특성이 사라지고 서울의 변방 어디쯤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방대학의 인기학과에 지역할당제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지역 공무원 선발에 지역 대학 출신을 우대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공영방송과 공기업의 직원 신규채용에 지역할당을 하면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공영방송 채용에 지역할당이 있었다. 그런 제도를 정치적인 계산으로 없애 놓고 이제와 지방대학을 육성하겠다고 호들갑 떠는 모습에서 신뢰를 느끼기는 어렵다. 당장 이런 제도를 되살리는 일부터 해야 정부를 신뢰한다.

지방정부도 이제 생각을 달리할 때가 되었다. 지역 출신이 서울 명문대를 거쳐 고급공무원이 된다고 지역을 위해 중앙정부와 연결통로가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자습하고 서울의 대학을 다니다 중앙에서 근무한 사람이 지역을 얼마나 알고 사랑하겠는가? 나중에 내려와 선거에 나올 생각 말고 뭘 더 할까?

좀 부족한듯해도 지역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이자. 지역의 일자리에 지역 출신이 우선 채용되도록 제도를 손질해 보자. 지역 문화와 학문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을 해보자. 서울로 가는 장학금으로 지역에 다양한 장학금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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