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맞대결하면 진다고?
북과 맞대결하면 진다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11.10 2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선친은 내가 신체검사를 받던 날 아침까지도 전전긍긍 하셨다. 현역 부적격 판정을 받을까봐서였다. 삐쩍 마른 체격에 심한 근시였던 나는 ‘사지가 멀쩡한 아들이 방위복 입고 동사무소나 들락거리는 꼴은 볼 수 없다’는 그에게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군의관을 속여서라도 현역 입영 판정서를 받아오라는 엄부의 지상명령을 받고 신체검사장으로 나서는 나 역시 심경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우도 그런 기우가 없었다. 단 한번의 제동도 걸리지않고 신체검사장을 일사천리로 통과해 현역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검사장을 나서며 몇번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날 저녁 낭보를 접하고 대견해 하시던 부친의 표정도 기억난다.

30여년 전 일이다. 군대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필수적 관문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서민들에게는 보편적이다. 고루한 사고가 여전한 시골이라 그런지 몰라도 자식을 군대에 보낼 나이가 됐음직한 주변 지인들을 둘러봐도 군 면제를 받았다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누군가의 아들이 면제를 받았다는 얘기조차도 최근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사는 읍에서 체육회장을 맡고있는 사람은 해병대에 자원했다가 탈락해 육군으로 복무한 한(?)을 풀기 위해 기어이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 복무시켰다.

그런데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벌어질 때마다 이같은 서민의 신조는 시대에 뒤떨어진 아둔한 처세로 전락해버린다. 청문회에 등장한 내로라 하는 인물들의 태반이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면제를 특기라도 되는 양 과시하기 때문이다.

MB정부때는 대통령과 총리, 여당대표 등 정권의 당·정·청 수뇌부가 모두 병역면제자로 채워지기도 했다. 당시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이 24.1%로 일반 국민의 10배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유도 서민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체중과다, 갑상선기능항진증, 근시, 장기유학, 허리디스크, 외국영주권 취득 등 손가락으로 꼽기가 힘들다. 당시 김황식 총리는 두 눈의 시력이 차이가 나는 ‘부동시’로 면제를 받았다.

현재 청문회가 진행중인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아들은 광범위한 진단명으로 알려진 ‘사구체신염’으로 병역을 면했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미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1대1로 붙으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대답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국방비를 북한보다 44배나 더 쓰고도 질 수 밖에 없다는 장군을 믿을 수 있겠느냐”, “국민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장병들의 사기를 꺾었다” 등등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장관이 “북한이 우리와 1대 1로 붙는다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보본부장 발언의 진위와 배경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핵과 생화학무기 등 북이 보유한 특수 전력을 감안해 전력상 우위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는 불리하다는 주장을 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종북 정당과 단체가 판을 치고 국정원과 군의 정상적인 사이버 활동이 폄하되고 있다’는 보수의 입장을 군이 우회적으로 대변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렇게 구멍뚫린 안보의식으로는 북을 이기기 어렵다는 경고를 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의원의 질문을 빌어 국민의 취약한 안보의식을 지적한 것이 맞다면, 병역면제를 대물림하며 1%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안보관과 국가관은 믿을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지금 어느 진영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