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事必歸正)
사필귀정(事必歸正)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11.05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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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어제 오전 9시50분, 청주지방법원 327호 법정에 열린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이 청주시를 상대로 제기한 도로철거 및 토지인도소송 항소심에서 청주지법 민사항소 1부(재판장 이영욱부장판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청주시민대책위원회의 회원들과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려진 이 판결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주시가 친일파 후손들에게 도로를 반환하거나 토지 사용료를 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면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왔던 친일재산환수법의 친일재산 범위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민영은(1870~1943)은 대한제국에서 괴산군과 청주군의 군수 등 관리를 역임했고 을사조약 이후에는 여러 친일단체에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 명감>>에 353명의 공로자 중 한명으로 기재되어 있는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그런데 이 민영은의 후손 5명이 지난 2011년 3월 청주시를 상대로 12필지(총 1,894.8m²)의 토지를 인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작년 11월 청주지법의 1심 재판부는 ‘청주시는 도로를 철거하여 그 토지를 인도하라. 지금까지 무단점유한 부분에 대해 2억3천여만 원을 지급하라. 또 판결일로부터 토지의 인도일까지 원고에게 매달 1,780,000원씩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었다.

이에 공분한 청주 시민들이 일어섰다. 지난 3월 27일, 34개 시민단체가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의 토지반환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동에 나섰다. 먼저 시민대책위는 청주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1심에서 청주시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점을 지적하고 항소심에서는 그 땅들이 1심에서 제기하지 않았던 반민족 행위로 축적한 친일재산임을 강력히 주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청주시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여나갔다. 또 주요 도로에 현수막을 붙여 친일파 후손들의 후안무치한 토지반환소송을 널리 알렸다. 시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2만 2천여 명의 시민이 서명에 참가했고 시민대책위는 이 서명지를 탄원서와 함께 재판부에 전달했다.

청주시도 민영은의 친일행적을 찾아내고 친일재산임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언론의 관심도 뜨거워 시민대책위의 활동은 언제나 주요뉴스로 자세히 다뤄졌다. 그리고 2심 선고일이 다가올 즈음 민영은의 직계 자손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막내딸 민정숙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토지반환소송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게 하고, 소송을 제기한 장손들에게 사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는 깨우침이 되게 해달라면서 현명한 판결을 원한다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런 노력들의 결실이었을까?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2주 연기하였다. 그리고 어제,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실 이번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1심의 결과가 그렇고, 친일재산환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친일재산조사위)가 그 땅을 국고환수 대상에서 제외한 토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주지법 민사 항소심 재판부는 친일재산조사위의 결정을 뒤집고 친일 행적을 폭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따라서 그동안 있었던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환수 소송뿐만 아니라 앞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할 재산환수 소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자의 틀에 갇힌 법조문에 정의와 양심이라는 정신을 불러 넣어준 재판부의 판단에 찬사와 경의를 보낸다.

이 판결을 계기로 지금까지도 발호하고 있는 친일파들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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