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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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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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생활자
송 찬호

겨우내 파먹은 김칫독을 꺼내다.
땅속에서 방 속의 방,
모서리 닳은 둥근 지하의 방을 들어올렸다.
깨진 틈으로 들여다보니
먹다 남긴 한 포기 김치처럼
추위에 절어 있는 사내가 웅크리고 있어,
그 동안 그곳에서 무얼 먹고 지냈습니까
희미하게 웃는 그의 입가에서
물씬 신 김치 냄새가 풍겨나왔다.

해고된 후 오랫동안 잠만 잤지요.
등 밑이 따스했습니다
이른 봄날 아침, 모락모락
김 나는 땅을 파헤쳐보니
조그만 애벌레가
웅크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날 풀리면 3공단에서 다시 만납시다.
못다 이룬 잠을 위하여
흙을 도로 덮어주었습니다.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우리가 파먹는 밥그릇 밑에는 또 하나의 방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날개를 달았던 흔적이 있던 애벌레의 멀고 먼 유배지이다. 누군들 한 세상 목숨 걸지 않고 사는 것들 있겠나. 마음 착한 아내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닮은 둥근 얼굴을 낳고 싶지 않겠는가. 신 김치 냄새를 풍기는 해고된 노동자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일이다. 상처가 많은 노동자의 몸이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웅크리는 거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이 그리운 계절의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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