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심(御心)을 헤아리는 시대
어심(御心)을 헤아리는 시대
  •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 승인 2013.10.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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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정치는 시끄럽다. 국론분열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의 소란은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 데 꼭 필요하다.

역대 정권 중에서 참여정부 때가 가장 시끄럽지 않았나 싶다. 굵직한 정책 사안이 유독 많았다. 한미 FTA 협상,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재배치와 전시작전권환수, 양극화 심화로 인한 비정규직 문제 등 여·야간 당쟁을 넘어 보수와 진보, 진보와 진보 등 사안별로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여기에다 한 가지 더 보태면 권위주의 타파를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의 격식을 파괴한 언변은 늘 구설수에 올랐다. 오죽하면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고 있던 전여옥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APEC 정상회담을 위해 순방길에 오르자“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직무 정지 때, 휴가 갔을 때, 그리고 해외순방 때의 세 가지 공통점은 ‘그래도 나라가 조용했던 때’라는 뼈있는 농담이 시중에 떠돈다.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라는 논평을 낼 정도였다.

특히 참여정부는 같은 편이라 여겼던 노동계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직법안, 특수고용직 등 당면한 과제에 대해 장외전을 선언하고 참여정부를 ‘반노동자’ 정부로 규정, 정권퇴진 운동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술좌석에서는 대통령 이름이 호칭이 떼인 채 불리고, 호불호가 분명한 민감한 정책에 대해서는 일부러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MBC의 100분토론은 손석희 아나운서의 깔끔한 진행도 한몫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정책이 많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에서 여론형성을 위해 일부러 정책화하는 것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큼 국민이 국가의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침묵’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다.

“국정원 대선개입은 과거 정부 때 일이고 그 덕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는가 하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후보자에 대한 댓글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감에서 윤석렬 여주지청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검찰 윗선의 외압논란으로 검찰조직이 내홍에 빠졌지만,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묵언수행’을 자처하고 있다. 야당과 외부에서 대통령의 침묵을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에도 말을 극도로 아끼는 정치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 포기에 의견이 분분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한참을 뜸들이다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말 한마디로 한나라당을 두 동강 내었다. 이 발언은 친박과 친여를 구분하게 했으며 ‘소신과 원칙’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소신과 원칙이 ‘조자룡 헌 칼 쓰듯’ 아무 때나 적용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나가도, 국민의 다수가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도, 국정원 스스로 개혁만 하면 된다는 사고는 납득할 수 없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소통의 예술이다. 중차대한 사안에 적절한 시기를 맞춘 대통령의 의사표명은 난맥상으로 흐르는 국정을 바로 잡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를 신뢰하게 한다. 대통령의 잦은 발언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 것도 문제다. 잘못하면 불통의 이미지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어심(御心)을 헤아리는 조선 시대도 아니고 자신에게 표를 몰아준 사람만의 대통령도 아니다. 말 그대로 좌·우 계층을 아우르는 자리가 대통령이라는 자리다. 말은 적을수록 좋지만, 때를 놓친 말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국민의 요구와 바람을 읽고, 국정의 잘잘못을 밝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촌극을 멈춰야 한다. 이미지와 화면에 갇힌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을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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