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퇴행, 낙하산이 문제다. 
공기업 퇴행, 낙하산이 문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10.21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국정감사 단골들이 어김없이 올해도 찾아왔다.

방만한 경영과 낯두꺼운 직원복지로 주기적으로 국민들을 열받게 하는 공기업들이다. 국감때마다 등장해 뭇매를 맞고 가지만 개선은커녕 이듬해 국감에는 더 한심한 모습으로 나타나 국회를 한껏 조롱한다.

한국도로공사는 부채가 26조원에 달해 1년 이자만 1조170억원에 달한다. 올해 국감에서는 이 조직이 지난해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700억여원을 안긴 것으로 드러났다.

빚과 이자를 늘리느라고 애썼다며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퍼주는 해괴한 조직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이밖에 공기업의 ‘헤럴 모저드’ 사례는 올해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국토부 산하 8개 공공기관은 2008년부터 직원들에게 자녀 학비로 439억원을 지급했다.

산업부 산하 공기업들은 한술 더 떴다. 2010년부터 3년간 무상으로 1245억원, 무이자로 1526억원을 지원했다. 상한액도 없이 아낌없이 베풀었다.

부채가 8조원이 넘는 한수원은 지난해 법인카드로 밥값만 138억원을 지출했다. 업무추진비를 노래주점이나 휴일날 일식집에서 쓴 사례도 적발됐다. 인천공항 한 간부는 해외출장에서 하루 150만원을 썼다.

공기업 부채는 정부채무보다도 많아 국가채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형 국책사업과 투자사업을 떠맡기 때문에 부채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이를 줄이거나 최소화하려는 자구적 노력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공기업 중 빚이 가장 많은 LH공사는 직원이 정원의 10%를 초과한다. 민간기업 같으면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피바람이 불었을 조직들이 정부와 국민의 지갑에 기대 몰양심적 경영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고질적 일탈과 퇴행의 원인으로, 각계에서 한목소리로 지목하는 것이 ‘낙하산 인사’이다. 특히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보은 형태로 이뤄지는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 부실의 원흉으로 꼽힌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단체장과 임원은 전문성이 부족해 조직 장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조직원들의 논리에 휘둘려 오히려 외부의 개혁 요구를 차단하는 역기능을 수행하다 임기를 마치기 일쑤이다. 향후 자신의 정치적 거취에 신경을 쓰다보니 경영은 뒷전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미국 주재 고위 임원은 미국 무역관에 자신의 자녀를 취업시키고 여직원을 성희롱했다가 국내로 소환되기도 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감사는 평일 골프장 주변 식당에서 전·현직 국회 보좌관들을 접대했다. 능력과 인품을 고려하지 않은 논공행상식 인사가 빚은 후유증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지방공기업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안전행정부가 지방직영기업, 지방공사, 지방공단 등 388개 지방공기업에 대한 2012년도 결산을 분석한 결과, 부채가 7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은 최근 청와대에 “공기업과 공공기관 인사를 통해 지난해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배려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대선 캠프 때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는데 적절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며 “그들을 무시하면 다들 뒤집어질 것이다”는 말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배려자 명단’이 청와대에 전달됐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은 없는거나 마찬가지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게 낫다”며 공기업에 대한 강도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대통령의 공기업 쇄신은 새누리당이 요구한 논공행상 인사를 단호하게 내치는데서 시작돼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