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6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All Peace 선생님
오 향 순 <수필가>

봄이면 목련꽃 터널이 만들어지는 교정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교실 건물 옥상에는 비둘기 아파트가 있었고 우리가 목련꽃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에는 비둘기들이 엑스트라로 찍히곤 했다.

갈래머리 소녀들의 감성을 키워 주던 이런 학교 환경 속에 서늘한 바람 같은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베이스 톤의 다감한 목소리, 윤곽 뚜렷하고 가무잡잡한 얼굴의 전평화(全平和) 선생님이시다. 우리가 이름을 영어식으로 표현해 All Peace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지내던 그 분은 음악을 가르치셨고 유머가 넘치면서도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음악수업 시간 만큼은 선생님께 어울리지 않는 길다란 몽둥이를 들고 계셨다. 선생님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제자들에게 넉넉하고 견고한 심지 하나씩을 가슴 속 깊이 심어주고 싶으셨던 걸까. 우리의 음악교재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애창곡 집 500選'이었다. 음악 시간마다 가곡이나 고전음악을 두 세곡씩 선별해서 함께 부르며 곡을 익혀주시고 다음 시간까지 반드시 가사를 외우게 했는데 못 외우는 학생은 여지없이 몽둥이세례를 받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정신을 살찌게 하기 위해서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매를 맞은 날은 눈물을 흘리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되는지 야속한 마음이 컸다.

때때로 음악방송에서 흐르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어메이징 그레이스,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같은 곡을 따라 부르며 잡념을 삭히고 마음이 차분해질 때면 호되게 느껴졌던 그 매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된다. 매의 위력이 아니었다면 삼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가슴에 그 선율이 흐르지는 못 할 테니까.

얼마 전 큰 파문을 일으켰던 한 교사의 어처구니없는 구타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디서든 백발의 멋진 노년을 살고 계실 우리의 All Peace 선생님이 새삼 그리웠다. 여고시절을 추억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중년의 아낙이 되었을 친구들의 궁금한 안부와 함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강진 유배시절에 부인이 헤진 치마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병든 아내의 애틋한 정이 담긴 빛바랜 천을 잘라서 가계(家戒)를 손수 쓰고 넉 점의 소책자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냈고, 남은 치마 조각은 매화, 참새그림이 있는 족자(梅鳥圖)를 만들어 시집간 딸에게 주었다.

유배지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책과 족자는 그 자녀들 평생의 지침서로 반듯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도 남음직하다. 다산 선생님의 그 하피첩(霞피帖)이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는 우리마음까지도 숙연해질 정도였으니.

지금은 넘치는 지식과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것 중에 우리 후세대들에게 진정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유흥이 난무하고 유혹 많은 흐름 속에서 저들의 삶을, 저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지켜 줄 그것을 오늘도 기도 안에서 간절히 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