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친정엄마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9.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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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잡곡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히고 뼈 생성을 촉진시키는 포스테오 주사약을 친정어머니 배꼽 주변에 놓아 드린다. 벌써 두 달째 동동거리는 매일 아침의 우리 집 풍경이다.

어머니는 두 번의 허리시술을 받았는데 뼈가 약해 무너져 내려 세 번의 수술을 다시 받았다. 뼈만 앙상히 들어나 있고 미음만 간신히 넘기셨던 세 달 동안의 병원생활이 치매증상까지 일어났다. 어떤 날은 헛것이 보이는지 마구 소리 질러서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밤잠을 못 잔다고 간병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푸념을 하는 날은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아팠다. 어머니가 저러다 집에 못 돌아오실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서울병원에 오르내리며 딸을 봐도 도무지 말을 안 하시고 입을 다물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제발 어머니 퇴원하시면 내가 정성껏 잘 모실테니 내 효도 받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간병인이 전화를 했다. “죽어도 엄마를 돌보지 못하겠으니 따님이 와서 간병을 하던지 퇴원을 시키세요?” 갑작스런 말에 어이가 없고 괘씸했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어서 우리 집으로 모셔 왔다. 나중에 어머니가 “그 간병인이 무서웠어”라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깡마른 몸집에 뭐 하나 맞는 옷이 없고 미음으로만 끼니를 이어간 얼굴빛은 창백했지만 참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식사부터 동부 넣은 밥 한 공기를 다 드시면서 참으로 맛있는 밥을 오랜만에 먹어본다고 하셨다. 그 마음 짠했던 날처럼 똑같은 마음으로 엄마를 돌봐 드릴 수는 없는 건가. 나도 모르게 엄마가 생각하는 간병인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변해가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나는 새 옷을 참 좋아했다. 지금도 옷 욕심은 여전하여 먹는 것 보다 옷 사는 것 이 더 행복하다. 엄마는 5일장 서는 구말장을 잘 가셨다. 덕산장인데 그 때는 구말장이라고 했다. 옷을 사오지 않는 날은 골 부리며 밥도 안 먹었다.

예전에 어머니 따라 고추밭에 갔다가 뒤꿈치를 뱀에 물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 몸빼 바지 고무줄을 끊어 넓적다리를 묶고 삼촌 등에 업혀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했다. 그리고 증평 어디쯤, 뱀 물린 사람을 치료해준다는 약초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수소문 끝에 찾아내어 한 달쯤 그곳에서 또 치료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독사에게 물렸을 때 돼지비계를 상처에 붙이면 독이 빠진다하여 물린 자리에 돼지비계를 붙이기도 하고 삶아 먹기도 하고 다른 약초를 찧어서 붙이기도 했었다. 한 달여동안 치료하니 차츰 붓기가 빠지면서 걸을 수 있어서 추석 무렵 퇴원을 하였다. 집에 오니 엄마는 예쁜 치마를 사놓고 기다리셨다. “올 추석빔도 못 입혀보고 큰일 났음 어쩔 뻔 했어?” 하며 추석빔을 입혀놓고 앞뒤로 나를 돌려가며 살피고 딱 맞는다고 대견해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해마다 추석이 되면 그려진다.

지금, 어머니는 두달 전 퇴원하실 때 보다는 많이 좋아지셨다. 하지만 맘대로 움직일 수 없어 마음도 약해지고 가끔 억지도 부리며 세상 걱정 근심은 혼자 다 하신다. 이런 어머니께 “늘 좋은 생각만 하면 금새 건강해지실거야” 말하면서 답답하고 안타깝고 안쓰러워 화를 내기도 하고 우리 엄마의 남은 여생 행복하게 해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엄마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여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못된 딸이 되기도 한다.

곧 추석이 온다. 어릴 적 맞은 추석은 즐겁고 기쁘고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추석빔이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번 추석에는 나도 어머니를 위해 내 마음과 정성이 담긴 최고의 추석빔을 어머니께 해드려야겠다. 추석날 공단 한복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시고 손님맞이 하셨던 엄마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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