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숙제
여름방학 숙제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8.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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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여름방학을 맞아 이질 조카네 가족이 다녀갔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아이가 왔는데 여름방학 숙제가 “직업탐구”라면서 직업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방학 계획서를 보니 우리 때와는 사뭇 다르다. 방학 때 필수였던 탐구학습은 이제 원하는 사람만 가져 온다고 했다. 숙제 내용도 방학을 이용해서 취하는 휴식과 여행에서 느낀 점을 쓰는 등 아주 흥미로웠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방학 때면 늘 같은 숙제였다. 복습이 주를 이루었던 만큼 탐구생활 책자를 기재하는 것은 필수였고 모으기 1점, 그리기 1점, 식물채집, 곤충채집, 동시, 일기 그리고 거기 덧붙여 퇴비라든가 풀씨 한 홉 같은 것들이 딸려 있곤 했다. 그래도 방학 때는 실컷 놀았고 일기도 일주일 전에 몰아서 쓰고 방학생활도 몰아서 하고는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친구 한 명이 100원을 가지고 와서 탐구생활을 보여 달라고 했다. 백 원 받는 재미에 빌려 줬는데 그 친구는 내 것을 꼼꼼히 잘 베껴서 상을 받았었다.

그것이 참으로 억울했지만 백 원 받은 죄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 앓았다. 그 후로 정자로 글씨를 쓰고자 노력했었다.

우리가 하는 숙제는 거의 다 비슷했다. 소주병이나 맥주병 등에서 상표를 떼다가 붙이는 상표 모으기를 했고 어떤 친구들은 우표를 꼼꼼히 모아 붙이기도 했다. 우표도 지금처럼 새 것을 사서 붙이는 게 아닌, 소인이 찍혀 있는 우표를 모았지만 그것도 신문이나 구독하는 집의 몇 안 되는 친구가 했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어려운 숙제였다.

어느 해 인가는 아버지가 오빠 숙제로 식물채집 중 약초 채집을 해 주셨다. 산과 들에서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을 채집해 잡지책 중간중간에 넣고 맷돌로 눌러 놓았다가 어지간히 마른 후 백로지에 붙였다. 지금처럼 스카치테이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담배 갑 속지의 은박지를 잘라 밥풀로 고정시켰는데 많은 정성이 들어갔고 그만치 힘들었다. 오빠는 당연히 상을 받았고 나는 아버지께 항의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끝난 뒤의 개학날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학생들은 마른 퇴비를 머리에 인 채 교문을 들어서고 교실에서 풀씨를 거두다보면 바닥으로 떨어져 풀씨 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하고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았던 내 유년의 시절 우리를 살찌우게 하고 키운 것은 자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공들여 말리는 식물채집은 물론 날개 하나라도 다칠까 봐 방학 내 내 노심초사했던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자연에서 풍요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위기도 배우면서 청소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해 왔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와 여행을 가고 가족과 운동경기를 관람한 후 선생님께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것도 숙제란다. 여름철 농사일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리시대의 부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숙제다.

여행을 가고 운동경기를 관람한 후의 느낌을 작성하자는 게 취지라 해도 그 위에 자연을 보면서 얻는 느낌이 추가된다면 참으로 바람직할텐데 싶어 아쉽다.

요즘 학생들도 방학 때면 자연을 통한 산 공부를 하는 과정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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