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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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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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밥
김 승 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라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시집 '냄비는 둥둥'(창비)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어둠이 깊은 곳에서 익어간 밥알이 서로를 껴안고 새벽에 산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무릎이 아팠을 것이며, 얼마나 고개를 숙이며 고달픈 생의 다리를 건너왔을 것인가. 그래도 제 몸을 내주어 밥의 일가를 이루었으니, 참으로 대견하다. 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밥 한 그릇의 체온을 이끌고 온 하얀 별들이다. 지금 내가 산다는 건, 누군가의 밥상에서 하나의 별이 되는 것. 궁기(窮氣)의 밥솥을 열면 김이 확 끼치는 차진 밥이 되는 것. 내 몸은 수많은 사람의 손이 깃든 세계요, 길고 넓은 시간과 공간에 살던 생명의 숨이 고인 우주다. 이렇게 몸을 받았으니, 내 몸을 섬겨 다음 생명에게 사랑으로 건네는 일이 아름다운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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