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를 훔친 어미는 용서받았다
체리를 훔친 어미는 용서받았다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3.08.04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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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그리스 신화에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딸을 잃은 데메테르의 슬픔’이라는 신화다.

만물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인 당당한 지모신(地母神)인 ‘데메테르’가 목숨처럼 귀히 여기던 딸을 잃어버린 슬픔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벗은 발로 들판을 헤맨다. 미친 듯이 들과 산을 헤매던 데메테르는 우연히 땅의 갈라진 틈에서 딸 페르세포네의 허리띠를 발견한다.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에 반한 명부의 왕 하데스가 대지를 갈라 그녀를 지하세계로 납치해가는 와중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제야 딸이 명부에 있음을 깨달은 데메테르는 분노해 외친다. “은덕을 배신한 잔인한 대지위에 다시는 어떤 생물도 소생할 수 없을 것이고, 어떤 어미도 더는 자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울부짖었다.

이로 인해 대지는 무참히 말라갔고, 그 위에서 생을 이어가던 모든 생명체도 속절없이 스러져갔다. 결국 말라 죽어가는 대지와 생명을 보다 못한 신들은 하데스를 설득해 페르세포네를 내놓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지하 세계의 음식을 먹어 그곳을 완전히 떠날 수 없는 운명이 되어 있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일년 중 아홉달은 지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나머지 석달(그녀가 먹은 지하세계 음식인 석류 세알 때문)은 명부로 돌아가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데메테르도 어쩔 수 없이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만 딸이 지하 세계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그녀는 다시 대지에 대한 보살핌을 거둬들인다. 이 석달이 대지가 얼어붙는 ‘겨울’이 됐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부모다. 참된 사랑이든 그릇된 사랑이든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 방법을 그대로 따른다. 자식에 자식으로 이어진다. 그릇된 사랑은 결국 그릇된 자식을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중요하다.

‘세계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을 쓴 일본의 역사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저서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아들에게 주기 위해 조선과 중국 침략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자식을 보기 전까지는 완벽한 리더였던 그가 뒤늦게 아들을 봤는데 그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대륙침략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계획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사랑이 오늘날 “나치 정권이 헌법을 무력화한 수법을 배우자”는 취지의 개헌 망언을 한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의 제2인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같은 사람을 만든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땠는가. 1조원에 가까운 정치적 비자금을 대기업들로부터 강탈한 뒤 탈법과 부당한 절차를 통해 자식들에게 증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 역시 한참 일그러진 그릇된 자식 사랑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 같은 시국에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비양심적인 자녀를 만든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런 어미의 자식사랑도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정신지체장애인인 엄마가 자식에게 체리 맛 한번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3만원짜리 체리 한상자를 훔쳤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광고 전단을 돌리다가 아파트 입구의 체리를 담은 택배상자를 보자 집에 있는 애들이 아른거렸다. 초등생이 되도록 체리를 먹고 싶어해도 비싸서 엄두를 못내 늘 마음이 아팠던 그 체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가지고 가 아이들에게 체리를 실컷 먹게 하고 그에 대한 벌을 받으려 했다. 자식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딱한 사정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절도죄에 이례적인 결정이다. 체리 택배 주인, 경찰, 검찰이 처벌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청주에서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 빼앗고 훔친 것은 매 한가지인데도 왜 체리를 훔친 어미는 용서를 받을 수 있었나. 나는 어떻게 자식을 사랑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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