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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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3.07.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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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지난밤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밭에 심어 놓은 채소들이 온전할까 잠이 오지 않았다.

날이 밝기 무섭게 밭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고추나무가 이리저리 쏠리고, 가지 나무도 누워 있고, 토마토 나무는 밤새 머리채를 잡고 뒤잡이 하고 싸운 것처럼 봉두난발을 하고 있었다. 온전하게 서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넘어진 채소들을 하나하나 세우고 묶어 주었다. 아직 얘기 나무들이라 세찬 비바람에 많이 놀랐겠지 싶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참 많이 흔들린다. 사람에게 흔들리고, 돈, 명예, 사랑 등 많은 유혹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살았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메뚜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지새웠던 밤들이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고2 학생이 친구와 사소한 다툼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선생님이나 부모의 꾸중을 참지 못하고 극한상황을 만드는 여린 아이들이다. 한 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참지 못하고 여린 가지들은 꺾이고 뿌리까지 흔들린다. 그 순간에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그런 불행은 막았지 싶다. 그들이 흔들릴 때 믿고 따를 수 있는 한 사람 그가 그냥 거기서 있기만 해도 든든했을 것이다. 손만 잡아줘도 위로가 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무들에 지지대를 세워주면서 생각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살아갈 수 있겠다고.

우리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한 사람이 없어 벼랑 끝으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한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지켜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춧대를 묶어주면서 또 생각해 보았다.

지지대는 식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열매를 맺는 채소는 반드시 세워 줘야 한다. 그래야 가지를 유인하여 위로 쑥쑥 큰다. 나무가 휘거나, 꺾이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 주는 것이다.

고추, 가지, 토마토 나무에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니 이제야 편안해 보이고 농작물 폼이 난다. 진작 해주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비바람을 만난 것이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제때에 맞춰 거름도 하고 지지대도 세워 줘야 바르게 자란다는 것을 또 배운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일자 막대기 하나가 열매를 맺는 묘목의 일생을 좌우한다. 지지대를 세워 주지 않으면 어린 묘목은 바로 서지도 못 할뿐더러 열매도 맺을 수가 없다. 식물에 쓰는 지지대는 좋은 나무가 아니란다. 건축 자제나 공예품, 가구로 만들기엔 멋도 없고 단단해서 쓸모가 없는 나무로 만든단다.

그러나 식물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도 누구에게는 꼭 필요한 것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지지대를 세우며 깨닫는다.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꼭 많이 배워야 하고, 권력이 있고,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 정직해야 한다는 것,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부지런해야 하는 것,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을 나는 이곳 그럭실에서 채소를 가꾸며 배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왜 여유롭고 편안 해 보이는지도 알 것 같다. 나는 비바람에 혼비백산했을 어린채소들에게 지지대를 세워주고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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