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거리
살구나무 거리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3.07.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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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일어나기 귀찮고 힘이 들었지만 나는 마음을 다지고 운동복을 갈아입었다.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열고 힘찬 걸음을 내딛으며 상쾌하게 부딪히는 아침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집에서 살구나무가 있는 거리까지는 10여분이다. 가경천을 끼고 3,000 그루의 살구나무가 7㎞의 하천 둑에 심어져 있다. 봄이면 분홍 살구꽃이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걷기에 좋도록 푹신푹신한 우레탄을 깔아 놓았다. 또한 각종 운동기구들이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즐겨 이용하는 곳이다.

도심 속에 이렇듯 좋은 산책길이 있어 나는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 1시간 동안을 걸으며 간단히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등과 목에 촉촉이 땀이 배고, 즐거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 운동을 하기 전과 건강의 수치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은 것을 보면 효과는 만점인 듯하다.

산책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른, 중년, 젊은이 모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뛰고 걷는다. 대부분 활기에 넘쳐 씩씩하게 걷지만 힘들어 보여 안타까운 어른들도 계신다.

나도 60 중반을 넘었으니 건강한 젊은이들이 보기엔 힘들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허리를 굽혀 힘들게 걷는 노인을 보면 내 딴에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닥칠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연민의 정을 느낀다.

미래는 모든 이들에게 곱고 푸른 것만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오늘은 옛날의 미래였고, 미래는 더욱 푸르름이 퇴색될 것이다. 나는 떨어지는 낙엽이기 전에 빛 고운 단풍처럼 예쁘게 살기를 다짐하며 발걸음을 늦추어 여유를 누린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 고운 할머니의 앞을 추월하지 않고 조용히 뒤를 따른다. 혹시 지금까지 살면서 앞서려고 만용을 부려 다른 이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말이다. 이젠 한 발짝 뒤에서는 겸손과 여유를 갖는 삶이 되도록 살겠다고 조용히 묵주를 굴리며 기도를 한다.

운동을 시작할 무렵엔 분홍 살구꽃을 떨구고 작은 구슬같은 살구들이 조롱조롱 신기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어느 새 제법 큰 살구들이 가지가 휘도록 빛 고운 주황색을 띄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살구들이 땅에 뒹굴어도 줍는 사람이 별로 없다. 소독을 많이 하여 꺼림찍한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처음엔 나도 더러 살구를 줍는 사람을 보면 시어터진 살구를 무엇에 쓰려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호기심에 아침 산책길에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오는 길에 한 봉지 주워와 깨끗이 씻어 맛을 보았더니 맛이 괜찮은 듯하여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한방에서 ‘행인’이라 불리는 살구씨는 진해, 거담 작용이 뛰어나 약용으로 쓰이고, 살구는 풍부한 비타민의 영향으로 어린이의 발육을 돕는다고 했다.

또한 야맹증 및 피로회복에 좋고, 폐를 깨끗이 하며 얼굴의 기미, 주근깨 등에도 효과가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번 살구를 주워 쨈도 만들고 효소를 만들어 항아리에 보관하였다.

이제 살구나무 거리는 건강을 도와주고 삶을 반추하여 모난 나를 다듬는 좋은 산책로 역할을 한다. 먹거리를 귀하게 여겨 비가 오면 우르르 떨어지는 살구를 한 알도 남기지 않고 줍던 어린 시절 고향집의 새벽. 지나치도록 풍요로워 지천으로 널려있는 살구를 보고도 무관심 속에 썩어 버려지는 살구의 모습. 두 모습이 대비 되어 안타깝지만 매일 아침 살구나무거리를 걸으며 몸도 마음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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