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김영란법 된 김영란법
反김영란법 된 김영란법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3.07.0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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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김영란법’의 본명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이해충돌 방지법’이다.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입법 예고하면서 당시 위원장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법안이 입법한 기관장의 이름으로 더 널리 불리는 경우는 흔치않다. 그만큼 법안의 무게나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다. 김 전 권익위원장의 이미지와 법안의 취지가 상통하는 면도 반영됐을 지 모르겠다.

김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다. 그는 대법관 재임 중 “임기가 끝나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않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퇴임후 로펌이나 변호사사무실이 아닌 대학 강단에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법조계의 악습 중 악습으로 꼽히는 ‘전관예우’ 관행을 앞장서 타파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서민들은 ‘100억원을 포기한 아름다운 약속’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그가 변호사로 명함을 바꾸고 전관의 예우를 누렸다면 그만한 돈은 수월찮게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익위원장 때도 남편이 대통령에 출마하자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만일 법관 퇴직 후 그의 행보가 대형로펌의 고수당과 정부 요직에 연연하는 구차함으로 이어졌다면 김영란법 취지는 퇴색했을 테고,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국무총리실까지 나서 1년 가까이 조율했다는 정부 조정안에는 김영란의 이름만 남아있고 정신은 사라져 버렸다.

형사처벌 대상은 직무관련성이 있거나 지위·직책상 영향력 행사가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했다. 그 외의 경우는 과태료 부과로 형사처벌을 대신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에게 대가없는 금품을 줄 사람은 없다’는 절대적 상식에서 출발했다.

평생 눈먼돈 한푼 구경하지 못하는 들판의 농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근로자나 자영업자 등 서민의 상식을 담아낸 법안이었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도 이들 서민들로부터 공직비리 근절을 위한 가장 실효적 장치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서민들과 딴판인 모양이다.

정부는 법안을 주물럭거리면서 과잉처벌의 논리를 폈다. 공직자가 직무와 연관성이 없는 금품을 받고도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대가성이 없는 선의의 금품이 실제로 존재하고, 이 돈은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김영란법이 등장한 시기는 일명 ‘스폰서 검사’들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였다. 스폰서는 평소에 지속적으로 권력자나 인허가권자를 관리하다가 때가 됐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다. 평소에 뿌려댔으니 스폰서가 대가를 챙긴 시점에서는 업무 연관성도 대가성도 찾아내기 어렵다.

선의와 교제를 빙자한 스폰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방책으로 대두된 것이 김영란법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재직 중 건설업자에게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그제 구속영장이 청구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할 말이 많게된다.

‘자유와 진리를 향해 무명의 헌신’을 한다는 국가정보원은 공사를 허가·발주·감독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장과 건설업자는 업무적으로 연관될 일이 전혀 없다. 돈을 준 건설업자가 국가안보에 헌신하는 원장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선의를 베풀었다고 하면 업무연관성은 입증이 어렵다. ‘지위를 이용한 영향력 행사’ 규정도 애매하기 짝이 없어 그가 동원할 최고 변호사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정말 가혹한 행위는 위정가들이 일이 터질 때마다 입으로만 사정과 개혁을 외쳐되며 국민들을 우롱해온 것이다.

기존의 법에 과태료 조항을 추가했을 뿐인 이 법안을 더 이상 김영란법으로 부르면 안된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배신한 ‘반김영란법’이라고 해야 옳다. 국회도 이 누더기 법안에 동조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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