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그러나 떳떳하게
은밀하게 그러나 떳떳하게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7.02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더운 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국가정보기관으로 미국엔 CIA, 옛소련에는 KGB, 우리나라에는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가 있었다. 세 기관이 서로 우수성을 겨루기 위해 경기를 했다. 큰 산에 쥐 한 마리를 풀어놓고 얼마나 빨리 잡아오는지 평가하는 경기다.

엄청난 장비와 인력을 쏟아 부어 미국 CIA는 5일 만에 잡아왔다. 사람들은 엄청난 장비와 인력에 놀랐다. 옛소련의 KGB는 저명한 동물학자나 지리에 능숙한 사람을 비밀리에 동원하여 3일 만에 쥐를 잡아왔다. 사람들은 소리 소문 없이 학자나 기술자를 끌어들이는 능력에 놀랐다.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이틀 만에 엄청나게 큰 쥐를 잡아왔다.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놀라는 사람들은 쥐가 아니라 곰인 것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곰이라고 웅성거리자 곰이 소리쳤다. “나는 쥐입니다. 쥐란 말입니다.” 곰도 쥐로 만들 정도로 한국 정보기관의 고문은 유명했다.

북한 특수부대 조장 원류환은 첩보임무를 받고 남파된다. 남한에서 동구라는 이름으로 바보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달동네 바보지만 정이 넘치는 삶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다른 조장과 훈련 당시 어린이였던 리해진이 찾아온다. 남북관계의 변화로 이들의 존재가 거북하게 된 북한정권은 이들에게 자살명령을 내린다. 원류환은 정당한 이유를 알고 싶다. 가족의 안부가 걱정된다. 이들이 명령에 응하지 않자 북한 특수부대 최고 교관이 이들을 직접 처형하기 위해 내려온다. 이들의 운명은 모두 비극으로 끝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만화가 최종훈이 2010년 ‘만화 속 세상’에 연재했던 웹툰이다. 영화로 제작하여 올 6월초 개봉했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2011 대한민국 콘텐츠어워드 만화부문 장관상을 수상했다. 첩보기관의 이야기는 아이리스의 흥행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기 있다. 요즘 극장가에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인기절정이다.

첩보기관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것이 또 있다. 1972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전 당시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침입한 5명의 괴한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닉슨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행정부가 불법적으로 백악관에 만든 첩보기관원들이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측근에 의해 회유되어 범죄를 저질렀으며 또 위증도 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이후 특검과 상원의 특별위원회의 조사에서 대통령은 계속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발뺌했다. 책임자를 교체하고 적극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관련성은 부인했다. 대통령도 개입되었다는 증거로 백악관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도록 했으나 불리한 내용을 지운 채로 일부만 제출했다. 여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나머지 녹음테이프도 제출한다. 마침내 닉슨대통령은 사임했다. 간신히 후임 대통령의 사면으로 처벌을 모면했다.

정보기관의 쥐잡기 경쟁 우스개 이야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기간 댓글공작도 머잖아 유머의 소재가 되리라. 힘겨운 상황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정보기관의 근무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모욕일 것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정권의 입장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과 행복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지켜야할 것이 정권의 안보가 아니다. 정보기관 근무자의 자부심이 선거에 개입하려는 댓글공작은 절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안녕이다. 정권이 곧 국가와 민족은 아니다.

이들이 정치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도 엄청난 사건이지만 사과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거짓을 생산해내는 몰염치가 더 문제다. 한 가지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세력들은 워터게이트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끝날 일이 국가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결국 정권의 진퇴 문제로 번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