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미안하다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3.07.0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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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며칠 집에 머물던 작은 아이가 학교로 돌아갔다. 집이 그리워 왔을 텐데 바쁜데다 몸이 부실한 엄마 때문에 집안 일만 도와주다 가는 게 마음에 걸려 학교까지 동행했다.

오랜만에 가 본 캠퍼스는 푸르름으로 싱그러운데 이곳저곳 걸려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학교는 금품수수와 ‘성희롱 논란’ 교수의 복직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학부모로서 씁쓸함을 넘어 화가 났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성희롱은 인정하나 해임은 지나치다는 판결을 받았으므로 다시 교단에 선다는 이야긴데 말이 안 된다.

오래전 학교 관련학과 홈페이지에서 이런 사실을 접했을 땐 믿고 싶지 않았다.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는 데 더 마음이 쏠렸다. 왜냐하면 교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충격적인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수업과정상 이해를 돕기 위해 몸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 무색할 만큼 자극적이고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때 총장실로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이야기가 학교 홈페이지에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 학교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를 물었던 것 같다. 그 때 여직원은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다. ‘뇌물수수’와 ‘성희롱’ 인정 판정이 내려짐을 알았을 때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문제로 재판이 진행되면서 정작 피해를 본건 우리 아이들이었다. 전공 지도교수자리가 비면서 부모 잃은 고아처럼 학과는 소외당했고 진로를 정하고 기초를 연마하기에도 바쁜 시간들을 흘려보내게 된 것이다. 아이는 혼란스러워했고 회의를 느껴 휴학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겨우 지도교수가 정해지고 안정된 커리큘럼으로 진행된 지 얼마 안 돼 또 해직교수 복직의 논란 가운데 서게 된 학생들이 안쓰럽고 가엾다.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이 더운 여름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국회로 나설 때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학교가 소속된 공공 기관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건 지 묻고 싶다.

내 책상위에는 지난 스승의 날 어느 교수가 썼던 반성문이 붙어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내게도 귀감이 되는 글이기에 가끔 들여다본다.

‘가슴 두근거림 없이 매년 신입생을 맞이해 온 삶’,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가르치기보다는 성공의 처세술을 가르치는데 쫓기고, 자신의 전공 분야만 고집함으로써, 학생들을 편협한 학문의 세계에 묶어두려 한 것’, ‘학생들이 학교 밖 학원을 다니며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따로 배우게 한 것’, ‘학생의 학습 성과는 철저히 평가하면서, 교수 자신의 교수성과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르쳐온 것’

명예를 되찾는 길은 성급한 복귀가 아니라 교수로서 귀감이 되지 못한 점에 대한 사과와 깊은 반성과 성찰이 먼저 아닐까?

아이가 짐을 옮기는 사이 잠시 그늘에 앉아 있으려니 처음 이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길이든 아이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는 이 사회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차마 건네줄 조언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만과 독선으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버린 사람들, 유명한 작가임을 핑계로 학생들의 수업권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계속 교단을 지키는 한 대학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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