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와 오른쪽 뇌의 시대
공예와 오른쪽 뇌의 시대
  • 정규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 승인 2013.06.20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정규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인류는 원시 수렵과 농경사회, 그리고 산업시대를 통과해 지식정보시대를 지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것을 채집하거나 이보다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역시 야생의 것을 사냥해서 생명을 유지하던 인류는 곡식을 길러 먹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한 곳에 머무는 정주(定住)의 개념을 비로소 익히게 된다.

그리고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친 인류는 이때부터 음식을 익혀 먹거나 흙을 이용해 그릇을 만드는 등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을 거친다.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자급자족의 한계에서 벗어나 잉여 생산물을 통해 경제활동에 눈을 뜬 인류는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마침내 산업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산업사회를 초월해 사실상 컴퓨터가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첨단 지식 정보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다니엘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 과정, 그중에서 특히 산업시대 이후의 인간대 기계의 대결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전 지구를 뒤덮기 시작할 무렵, 미국의 토목공사 인부였던 존 헨리는 인간의 힘과 증기기관의 힘을 견주는 내기를 했다.

기계가 내뿜을 수 있는 엄청난 파워를 감히 실감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감히 기계가 인간과 비교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상황이겠지만 지금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대결은 성사됐고, 힘자랑이 넘쳤던 존 헨리는 증기기관 드릴과 당당하게 맞서 기계와 인간 중 누가 더 빨리 터널을 뚫는가 하는 시합을 벌였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존 헨리의 승리였으나 존 헨리의, 아니 기계와 대결을 벌인 인간의 한계는 거기까지 인가. 경기 직후 탈진해 쓰러진 존 헨리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그로부터 한참 후 인간은 다시 기계와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스 선수로 대접받고 있는 가리 카스파로프는 1997년 IBM의 컴퓨터 <딥 블루>와 인류 사상 초유의 체스 경기를 갖게 된다.

‘컴퓨터가 감히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가리 카스파로프는 그러나 이진법을 구사하는 컴퓨터에게 지고 만다.

절치부심하던 사람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은 그로부터 6년 후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6연전의 형식으로 벌어졌으나 결과는 무승부.

경기 후 "나는 인간에게 몇년간 유예기간을 주었을 뿐"이라는 가리 카스파로프의 탄식과 ‘인간 두뇌의 마지막 저항’이라는 평가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수렵, 농경, 산업사회에 이어 지식정보산업의 시대를 구가하는 인류의 진화는 이같은 두가지 대결에서 보듯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오죽하면 감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선언이 제기되고 있겠는가.

하기야 인간이 발명한 것이긴 해도 강력한 에너지를 거의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인간의 오른쪽 뇌와 왼쪽 뇌가 감당하는 역할과 능력에는 서로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계산과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 등 산술적 역할을 담당하는 왼쪽 뇌는 가리 카스파로프의 사례에서 보듯 컴퓨터에게 점차 그 영역을 침식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오른쪽 뇌.

인간의 오른쪽 뇌는 컴퓨터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창의성과 감성, 다지인, 그리고 예술적 영역을 당당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공예는 바로 이런 오른쪽 뇌가 감당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아름다움과 함께 윤택한 쓰임을 통해 더 풍요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핵심 패러다임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간의 오른쪽 뇌가 펼칠 무한 상상과 감동, 그리고 친절함에서 비롯되는 익숙한 기쁨과 새로운 행복이 펼쳐지는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이제 82일 남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