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에 대하여
진정성에 대하여
  • 정규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 승인 2013.06.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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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그 사이, 개망초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어느 집 담장을 대신한 울타리엔 노랗고 붉은 인동초가 어느덧 앞다퉈 피어난 유월.

2013청주국제공예비날레의 첫 공식 행사가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있던 6박8일의 사이, 겨우 꽃망울만 송알송알 맺혀 있던 개망초 무리들이 앞다퉈 꽃잎을 활짝 열고 여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제치하가 본격화되면서 한반도에 스며든 것으로 알려진 개망초꽃은 유월 전쟁의 상흔이 유독 아른거리면서 지금껏 우리의 심금을 서늘하게 하는 꽃입니다.

어느 들판 비어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틈새를 비집고 꽃을 피우는 개망초꽃은 달빛이 교교한 여름밤이면 그 하이얀 꽃색이 달빛과 어우러저 더 서글퍼지는 꽃입니다.

게다가 하얀 꽃잎 한가운데 자리잡은 노란 꽃술은 마치 달걀을 부쳐 놓은 모습과 너무도 닮아 계란꽃이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배곯던 시절 주린 배의 설움을 더 깊게 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그런 개망초꽃을 보면서 또 하나의 빚나간 세태가 떠올라 한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세상 일, 그중에서 사람의 일이란 것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음을 새삼 절실하게 느끼는, 내가 고국을 떠나 있던 그 며칠 사이의 시간입니다.

그는 한 때 촉망받는 공직자였습니다. 똑똑함의 정도이거나 추진력, 그리고 남다른 고집 역시 공직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않은 긍정의 아이콘으로 둔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아니 그전의 심상치않은 만행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비난을 받을 때부터 그의 몰락은 예고된 듯 합니다.

이역만리 독일의 새벽에 고국으로부터 전해진 출근길 긴급체포 소식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이토록 파렴치한 타락을 했으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사이 돈에 대한 탐욕의 끝을 상식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고, 그 어처구니 없는 한 개인 공직자의 탐욕은 같은 도시에서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합니다.

도덕이라는 숭고함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세상입니다.

고관대작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보통사람들 조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으면, 돈이 생기는 일이라며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세상이 무섭기만 합니다.

돈이 권력이 되고 능력의 잣대가 되며, 돈 앞에서는 신분질서마저 깡그리 무시되는 세상의 탐욕은 공포스러울 지경입니다.

사람들은 곧잘 진정성을 말합니다.

간절하게 사랑을 갈구하거나 희망과 기대가 절실할 때 사람들은 흔히 진정한 마음으로 숨죽여 절실하게 기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진정성에 혹시 스스로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는 건 아닌지 몇번이나 되짚어 생각하는 경우가 나를 비롯해 몇이나 될까요.

얄팍한 지식이나 식견을 내세우며, 특히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자신의 것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세상을, 그리고 그를 믿어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사람 됨됨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그럴듯하게 진정성으로 포장하면서 제 속에 탐욕과 거짓이라는 악마의 발톱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사람의 속내를 어찌 사람의 능력으로 미리 알아 차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그 사람이, 그 사람을 세상이 믿어주는 만큼 스스로가 진정어린 마음으로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하는 결 고운 속내를 갖고 있겠지 하는 바람이 전부일 것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탐욕으로 인해 빚어진 비리의 끝으로 영어의 몸이 됐고, 수십년동안의 공직생활의 자존심과 함께 몰락한 자신의 처지를 두고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러나 그의 통곡과 회한 만큼이나 그를 믿었던 공직사회와, 그의 얄팍한 재치를 부러워했던 시민들의 실망과 좌절의 통곡은 그보다 훨씬 크고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탐욕으로 인해 맑은 고을 청주가 신음하고 있으며, 착한 시민들의 진정성있는 깨끗함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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