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해학으로 버틴 생명력 몸으로 노래로… '흥' 전하다
풍자·해학으로 버틴 생명력 몸으로 노래로… '흥' 전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05.29 2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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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노동을 소리로 달래다-충북의 소리를 찾아서

<3> 음성군 감곡면 사곡2리 <각설이 타령>

각설이패 구걸할때 부른 노래=장타령·품바타령

4/4 박자 비애 서린 타령조 … 단순하고 반복적

장풀이·숫자풀이·투전풀이·화투풀이 등 노랫말


사곡마을 공순택 어르신, 고향 그리며 따라 불러

한 때 수수께끼가 있었다. 넘어도 넘어도 못 넘을, 가장 넘기 힘든 고개는 답은 보릿고개다. 서민들에 있어 어디 보릿고개만 배를 곯았을까. 먹을 것이 부족해서 궁핍했던 시절을 넘긴 것이 불과 40~50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라도 들면 굶주림은 정말 무서운 형벌이었다.

말라버린 논과 밭은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가슴이었다. 각설이들의 가슴과 깡통 또한 훵하니 뚫렸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곳간에서 정이 난다 했다. 곳간이 비니 이웃 간의 정도 메말라 각설이들의 고난과 애환도 깊다.

그러나 각설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풍자와 해학으로 위기를 넘기게 했다. '각설이타령'은 각설이패가 구걸할 때 주로 부르는 노래이다. 각설이패가 구걸할 때 기예를 보여주며 부르는 노래는,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흥보가'와 '변강쇠가'에 각설이패들이 '장타령'을 하는 것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각설이들이 조선후기 주로 장터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면서 불렀다하여 '장타령' 이라고도 한다.

각설이 타령은 보통빠르기의 4/4박자로 비애가 서린 타령조의 노래다. <미솔라도레>의 메나리토리로 구성되었으며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각설이들이 사라진 지금, 다행스럽게도 음성지방에서는 '각설이 타령'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음성 꽃동네에서다. 꽃동네 설립의 초석이었던 거지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0년부터 해마다 품바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랫말은 장풀이, 숫자풀이, 투전풀이, 화투풀이 등이 있으나 음성군 감곡면 사곡마을에서 부르는 '각설이타령'의 노랫말은 숫자풀이다.

감곡 IC에서 제천 방면으로 우회전해 가곡로를 따라 994m가다 우회전을 하면 복숭아 과수원 사이로 난 사곡로를 만나게 된다. 이 사곡로를 따라 1.92㎞ 이동하면 둘레 3미터의 300년생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마을 중앙에 위치한 사곡마을이 나온다. 예전 단오날에는 이 나무에 그네를 매어 놓고 그네를 뛰었단다. 지금도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당제를 지내고 이 나무에도 치성을 드리는 민속이 살아 있는 마을이다. 이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두 모이면 20여분 쯤 되는 작은 마을이다. 사곡리는 복숭아 과수원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해매다 5월이면 아름다운 복사꽃이 온 마을을 붉게 물들이는 고즈넉한 곳이다.

민요를 녹음하기 위해서 사곡리 마을에 여러 차례 전화 통화 후 네 번의 방문을 했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조사를 다녔지만 이 마을처럼 어렵게 가창자를 만난 적은 없었다.

네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성운경(경로당 회장)어르신을 대동하여 경로당에서 소리판을 벌였다. ‘각설이 타령을 부르는 분은 안계시냐’ 했더니 언제나 뒤에 조용히 계시던 한 분이 "제가 쬐끔 할 줄 알아요." 하셨다. 늘 뒤로 물러나 계시기에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찌나 흥겹게 부르는지 아침 일찍 먼 길 달려간 피로가 싹 풀렸다. 이 멋진 소리의 주인공은 공순택(남· 1943년생)어르신이시다.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셨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65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어려서 동네 어른들이 부르던 각설이 타령을 따라서 부르다가 객지생활의 어려움이 닥칠 때면 고향을 그리며 불러왔단다. 각설이 타령은 '품바타령', '장타령' 으로도 불린다.

숫자풀이로 엮어나가는 '각설이 타령'을 들어 보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텔레비전이나 그밖의 장터에서 한번 쯤은 들어보셨으리. 그 풍경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얼 -씨구 씨구 씨구 씨구 들어간다

얼 -씨구 들어간다 삼도리 티령하며 들어간다

한 발 가진 깍귀 두발가진 까마귀

세발가진 겅거기 네발가진 강아지

정든 님이 다리야 지리구 지리구두 잘 하구

품바가 품바 더잘한다

네 선생이 누구신지 나두 나두 잘하구

시경 서경을 읽었는지 유식하게도 잘 하소

논어 맹자를 읽었는지 뱅뱅뱅뱅 잘 한다

지리구 지리구 잘 두 한다

일자나 한자 들고 보니 일선에 계신 우리장병이 통일되기만 기다리고

이자나 한자나 들고 보니 이수중두 백로주에 백구가 펄펄 날아든다

삼자나 한자 들고 보니 삼팔선이 가로막혀서 통일 되기가 어렵구나

사자나 한자 들고 보니 사시행차 바쁜 길에 중간참이 요절인데

오자나 한자 들고 보니 오천만에 우리동포가 평화 오기를 기다리구

육자나 한자 들고 보니 육이오 사변에 남편 잃구 과부 생활로 들러간다

칠자나 한자 들고 보니 칠사단에 우리장병이 부모님 생각이 절로나네

팔자나 한자 들고 보니 판문점에 대회당이 삼년만에 끝이로다

구자나 한자 들고 보니 군인생활 삼년만에 고무다리 병신이 웬말이냐

십자나 한자 들고 보니 십년만에 찾아오니 고향 산천이 변했구려

지리구 지리구두 잘 하구 품바 품바 잘도 한다

 

이 노래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춤을 추며 해학적인 몸동작과 노랫말을 즉흥적으로 주워섬기기에 관중들로 하여금 어깨춤 들썩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섞어 가며 가락을 엮기에 형태적 안정을 주기도 한다.

점잖으시기만 한 공순택 어르신도 막상 타령을 시작하시면 일흔의 나이답지 않게 익살과 흥을 열정적으로 발산하시는 전설 같은 풍류인이다.

이 어르신은 복숭아꽃 만발한, 이른바 무릉도원에서 피리와 단소도 열심히 연습하신다. '각설이 타령'을 불러준 공순택 어르신께 이 글을 통해 거듭 감사드린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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