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모디린다
어둠을 모디린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05.22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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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손창기

눈대중으로 모를 모디린다
모내기 후 포기 빠진 곳, 할머니는
분명 어둠의 빈틈을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물처럼 촘촘이 모디리고 나서야
햇빛이 들고, 바람이 일고, 거울이 된다
고단한 하루의 무게로 내려앉은
발자국 스르륵 덮어버리는 햇빛,
포기 사이에 뜬 제 그늘까지 동여맨다
바람은 기우뚱한 모를 세우며
팽팽하게 오와 열을 당겨 놓기도 한다
순간, 무논이 젖빛 물거울로 떠오른다
물거울에 담겨졌던 미루나무 그림자, 산그늘
끝까지 껴안고 있는 저 울음들
그 연한 그림자 속, 할머니 발을 떼자
진초록으로 옅은 어둠이 다져지고 있었다
뒷짐지고 마을로 드는
할머니의 환하고 굽은 등이, 저 달이다
엉성한 밤하늘에
촘촘한 별들 하나씩 모디리고 있었다

※ 모디린다 : 모 사이 빠진 곳을 보식(補植)한다는 뜻의 경북 방언

※ 모내기 한 들녘을 지나다 보면 물이랑이 이는 논 한가운데에서 반짝, 햇살로 튕겨오르는 별을 보게 됩니다. 어둠보다 먼저 찾아온 이 별들은 할머니의 굽은 등을 타고 벼포기 하나 하나에 내려앉은 희망들입니다. 무논의 빈자리를 촘촘히 채우는 할머니. 고된 손길을 뗀 후에야 들녘은 볕과 바람과 산그늘을 거느리고 비로소 온전한 별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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