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노동·시집살이… 옛 여인들, 소리로 恨을 풀다
고된 노동·시집살이… 옛 여인들, 소리로 恨을 풀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3.05.21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씨앗는 노래·명타는 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
가락·노랫말에 여인들의 한숨·눈물 배어있어

설계리 길쌈노래 안옥임 어르신에 의해 전승

1992년 민속예술축제 문화관광체육부상 수상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흑백필름 같은 풍경 길쌈. 집집마다 아녀자들의 중대한 일거리였던 길쌈은 삼·누에·모시·목화 등에서 실을 뽑아 베·명주·모시·무명 등의 천을 짜는 과정을 말한다. 영동 설계리 마을에서는 목화를 원료로 하는 무명길쌈을 주로 했다.

무명길쌈은 목화밭에서 목화를 심어 자라면 꽃이 피고, 꽃은 곧 솜이 된다. 그 솜에서 실을 잣고 그 실로 무명을 만드는 일이다. 무명길쌈의 과정은 목화송이에서 씨앗을 분리시키는 씨앗기가 첫 시작이다. 씨앗을 분리한 후에는 목화를 펴서 솜을 만드는 솜타기를 한다. 솜을 뭉쳐 고치를 만들고, 물레질을 해 실을 뽑아낸다. 뽑아낸 실, 즉 도투마리를 베틀에 거는 베매기 작업을 거치면 실로 무명을 짜는 베짜기로 진행된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부녀자들의 손을 거쳐야만 가능해지는 적나라하고도 고단한 의례이다. 이 피할 수 없는 일상의 곤고함을 달래기 위해 부르던 흥얼거림이 길쌈노래이다.

영동길쌈 노래에는 씨앗기를 하면서 부르는 씨앗는 노래, 솜타기때 부르는 명타는 노래, 실잣기를 하면서 부르는 물레노래, 무명을 짜면서 부르는 베틀노래 등이 있다. 길쌈은 각자 자신의 가족 수에 따라 그 양과 질을 결정하므로 굳이 공동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영동 설계리 마을에서는 여럿이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즐기며 하는 것이 오랜 관습이 됐다. 또한 길쌈을 하다가 밤참으로 개떡이나 국수로 출출함을 달랬고, 이때도 그냥 허기를 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개떡노래’나 ‘시집살이 노래’를 불렀으니 우리 선조들의 DNA 속에는 숙명처럼 흥과, 가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영동 길쌈노래는 안옥임 어르신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안옥임 어르신은 옥천군 청성면 조분리에서 태어나 스물한살에 영동 설계리로 시집왔다. 길쌈노래는 처녀시절에 길쌈을 하며 한 마을에 살던 안순철씨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안옥임 어르신은 아들 둘, 딸 둘을 낳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길쌈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대로 재현하듯 한 집안의 아내로 엄마로서의 삶을 사시는 분이다.

안옥임 어르신의 집은 영동읍 설계리 영동병원 근처에 있다. 주위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현대 건물로 바뀌었지만 안 어르신의 집은 황토벽 건조실 두 채가 옛 모습 그대로 서있고 마당에는 우물까지 있다. 옛스러움을 간직한 이 댁을 조사차 몇 차례 방문했지만 언제나 정겨운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길쌈 노래를 청하자

“이제는 늙어서 목소리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하면서 씨앗는 노래, 명타는 노래, 물레 노래, 베틀 노래, 개떡 노래를 74세의 연세가 믿기지 않게 청아한 목소리로 불러주셨다. 뒷소리를 불러준 사람은 설계리 토박이로 같은 마을 청년과 결혼해서 1남 1녀를 둔 올해 61세의 방순녀씨이다. 가사 또한 정겹다. 가사 내용만 봐도 길쌈 풍경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진다.

 

씨를 앗세 씨를 아사 씨 아사보세

몽실 몽실 명을 따다 씨 아사보세

 

시누 올캐 마주앉아 씨 아사보세

삐그덕 삐그덕 씨 아사보세

 

뇌성소리 나면은 쏘낙비 오고

쏘낙비 오면은 흰구름 가네

 

씨를 앗세 씨를 아사 씨 아사보세

시누 올케 다정하게 씨 아사보세

  -영동 길쌈노래

우리의 옛 여인들은 낮에는 들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면 길쌈을 하였다. 낮의 노동만으로도 고되고, 험한데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하는 분량의 길쌈은 원망스러운 과제였으리라. 이 고된 노동의 과정에 신명을 풀어 고통을 달랬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가락과 노랫말에는 여인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있다. 일상의 고단함과 과중한 일감을 얼기설기 엮어 한세월을 살아온 여인들의 시집살이가 그대로 녹아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락, 그 질박한 삶의 소리는 그래서 애잔하다.

지치고 그늘진 삶을 위로받을 길 없는 시집살이. 더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으리. 노랫말에 푸념이 섞었으리. 입술 새로 나오는 한숨 같은 그것들이 당신 삶을 위로하고 그 힘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소리는 한을 풀어내는 정화의식 이었다. 소리로 힘든 삶을 덜어냈다. 어디에다 하소연 할 길 없던 여인들은 소리가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충북 영동길쌈 노래는 1992년에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해서 문화관광 체육부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에는 충북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해서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계리 마을에서 길쌈노래를 전승시키기 위해 목화 재배를 거르지 않고 해마다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