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의 위로
보릿고개의 위로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5.20 2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보릿고개의 위로

입하(立夏)가 지나면서 나뭇잎의 푸르름은 속도를 더하기 시작한다. 이제 신록(新綠)이라는 말은 무색하다. 짙은 녹음(綠陰) 곧 농록(濃綠)이 더 어울린다. 그러나 이즈음에 짙어지는 것은 나뭇잎 빛깔뿐이 아니다. 농사일은 고되고 먹을 것은 동이 난 농부의 걱정 또한 짙어만 간다. 보릿고개에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것은 역시 풋풋한 자연이고 마음 맞는 친구였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상수(李象秀)는 이러한 초여름의 모습을 정감 나게 그리고 있다.

◈ 친구를 찾아가 만나지 못하고(訪友不遇)

農家四月麥如雲(농가사월맥여운) : 농가의 사월은 보리가 구름같고

척촉花開不見君(척촉화개불견군) : 철쭉꽃은 피었는데 그대는 보이지 않네

小婢留人沽酒去(소비류인고주거) : 작은 계집종 손님 모셔놓고 술 사러 가고

花園芳草蝶紛紛(화원방초접분분) : 화원의 녹음방초에 나비 훨훨 날아다니네

※ 농가의 사월(四月)은 모내기가 한창인 바쁜 시절이다. 이때의 대표적인 농촌 풍경은 보리밭이다. 보통 구름은 성숙한 여인의 풍성한 머리카락이지만, 시인에게 구름은 사람 키만큼 훌쩍 자란 보리이다. 일은 힘들고 배는 주린 농부들에게 구름 같은 보리는 희망이자 위안이다. 구름이 주는 이미지는 풍성함과 불현듯 나타남이다. 초여름에 불쑥 자란 보리는 가뭄 끝에 불현듯 어디선가 피어오른 구름이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풍성한 식량인 보리는 긴 가뭄을 푸는 구름이다. 보리로 허기를 달래고서야 비로소 시인은 음력 사월의 꽃을 탐미할 겨를을 찾았다. 우리 말 철쭉의 어원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얼핏 보아도 한자어(漢字語)인 척촉()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독이 있어 잘못 먹으면 죽을까봐 양(羊)이 그 앞에 가면 머뭇거린다고 해서 척촉()이라고 했고, 이것을 우리말로 철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썩 아름답지 못한 유래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철쭉은 실제로도 독이 있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개꽃이라 부르며 경계하기도 하였다. 시인은 이러한 철쭉의 부정적 이미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시인에게 철쭉은 음력 사월 고단한 보릿고개를 잊게 해주는 마력을 지닌 꽃,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보리가 구름처럼 자라고 철쭉꽃이 만개한 모습에 정신을 뺏긴 시인은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친구의 부재(不在) 따윈 안중에도 없다. 꽃은 피었건만 친구는 만날 수 없다면, 이는 보통은 슬프고 안타까운 장면이지만,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집엔 친구가 아니더라도 시인을 반기는 존재가 충분히 있었다. 화창한 봄날 적적한 집을 혼자 지키던 어린 계집종이 시인을 반기고 나선다. 오죽하면 주인도 없는데 붙들어 놓고 술을 사러 가겠는가? 술은 단순히 귀한 물건만은 아니다. 술상을 차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호감을 극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구름 같은 보리에 배부르고 활짝 핀 철쭉에 마음이 들뜬 데다, 나이 어린 계집종의 뜻하지 않은 환대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 시인의 눈에는 보이는 것마다 아름답다. 친구의 시골집 소박한 마당은 잘 가꾸어 놓은 꽃의 정원(花園)으로 보인다. 아름답고 싱그럽기 짝이 없는 풀과 꽃, 그 사이를 누비는 나비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낙원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시련이 닥치게 마련이다. 문제는 시련이 아니라 시련을 극복하게 하는 위로이다. 시련이 있으면, 바로 그 곁에 그것을 위로하는 존재가 있음을 알아채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롭다. 보릿고개 옆에는 보리와 철쭉이 있지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