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3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행1 (오르막)
정상옥(수필가)

찌는 듯한 더위는 모든 일상을 정지시킬 듯 며칠 동안 기세가 꺾이질 않았다.

한낮의 햇살에 숨죽은 수풀처럼 무더위에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가고 추스릴수조차 없는 무력감마저 몰려와 늘어진 체신이 거추장스러웠다.

축축 늘어져 마루위를 뒹굴다 이대로 누워 버리면 영영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이 상반적으로 문득 일었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나가는 여전사인양 폭염에 맞설 단단한 채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의 강한 기세로 내리 쬐었고, 도심의 아스팔트길을 녹일 듯하다.

달굴 대로 달구어진 도심을 조금 벗어나 산에 이르니 숲길 초입에 줄지어 있는 초록빛 나무들과 마주한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생기를 찾고 있었다.

도심속은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녹아들 듯 지쳐있지만 푸른 숲속의 초목들은 팔월의 햇살을 받고 청청함이 넘쳐난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음과 양으로 혹은 어둠과 밝음으로 돌아가는 이중적 구조로 짜여졌음을 실감하는 단면이다.

한발자국 걸음마다 땀은 온몸을 흥건히 적셔오지만 산들바람을 가슴에 가득 담으니 일상에서 찌들었던 상념들을 훌훌 쏟아내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다.

천재적인 인간의 두뇌로 만들어 낸 인공의 기계바람이 숲속에서 불어오는 신성한 바람 한줌을 어찌 능할 수 있겠는가.

자연에 취해 산마루를 오른다.

능선을 타고 얼마를 걷다보니 내 키의 십수 배는 될 듯한 가파른 언덕이 앞을 막는다. 진보의 의욕보다 무언가 모를 위압감이 앞을 막아선다.

생각지 못했던 난관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잠깐 동안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막막함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 이것이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이다. 험한 난관 앞에서 물러설지 헤쳐 나가야 할지는 나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삶속에 여울이 깊고 얕음을 내다 볼 줄 아는 선견지명이 있다면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높디높은 언덕배기 앞에서 시작도 안 해보고 좌절하지는 않으리. 내게 주어진 길이라면 기꺼이 도전하리라.

내가 정한 인생의 지표를 향해 흔들림 없는 정연한 걸음으로 한 발자국씩 차분차분 올라가자. 도착시점이 좀 늦으면 어떠하리. 나를 밀치고 앞서가는 패기 등등한 장정들을 부러워하지 말자꾸나.

그들 또한 많고 많은 고난을 헤치고 이곳까지 온 노력의 승전사들 일진대, 도전을 후회하거나 정상에 쉽게 오르려 샛길을 택하는 얍삽한 잔꾀는 안 된다.

좀은 외로워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정도(正道)를 택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나의 바른 선택에 감사하리라.

자신에게 희망의 최면을 걸 듯 땅만 보며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덧 고갯마루 정상이다. 희열이 넘친다.

간간이 불어오던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한꺼번에 몰려와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이제 한고비 고난의 길을 제키고 올라섰구나. 고갯마루 정상에 서서 목표를 이룬 뒤에 느끼는 뿌듯한 감동과 함께 오는 행복감에 눈두덩이 뜨끈해짐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감사하리라. 내 앞에 펼쳐진 현실에 감사 하리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감탄하고 섭리에 순응하는 초자연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는 숭고한 순간이다.

거친 숨과 휘청거리는 지친 다리로 힘겹게 오른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들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그렇다. 지나온 뒤안길은 모든 것이 추억이고 목멘 그리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