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시인의 문학칼럼
김창규시인의 문학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8.18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양 다시 갈 수 있다면
내가 평양 갈 때 가져 간 것은 개인시집과 부채와 그리고 선물과 생필품 몇 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가방이 하나 가득이었다. 평양에서 가장 많이 인사를 나누고 정답게 지냈던 작가는 작고한 소설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이었다. 홍석중은 몇 차례 이 칼럼을 쓰면서 언급하였지만, 그는 호탕한 성격이었고 말도 잘했으며, 농담도 잘했다. 사진 찍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찍었다. 마지막 날 평양의 만찬 때 그는 온갖 수사를 동원해 우리를 즐겁게 했고, 동포 형제애를 돈독하게 하였다. 도종환, 김승환과 함께 앉은 만찬장의 식탁은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어떤 자리보다 특별하게 배려한 것 같다. 주석단이 앉은 바로 앞에 첫 번째가 남북작가들이 꿈꾸는 그런 6·15통일문학협의회와 같은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홍석중, 해외에서 참여한 재일동포작가 문학박사 김학렬,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중앙위원 조선문예사 사장 서상각씨였다. 또 함께 배석한 사람은 심기섭 북쪽민화협 책임자였다. 이 자리에서 잔을 들면서 참 많은 건배를 하였다. 우리 자리로 고은, 백락청, 황석영 염무웅 등 작가회의 원로들이 찾아와 평양의 마지막 밤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북쪽에 와서 아침 일찍 5시에 평양역까지 산책을 다녀온 일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평양역은 우리의 옛 서울역과 분위기가 같았다. 건축도 그랬고 이른 시간인데도 기차를 타기 위해서 광장에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고려호텔에서 평양역까지는 불과 7분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바쁘게 책을 읽으며 지나가는 젊은 대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시민들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평양의 지하철을 타보았기 때문에 별로 궁금한 것은 없었지만, 평양역 앞은 기차를 기다리는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졌다. 고려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을 보았다. 윈도우에 우표를 전시해 둔 것을 보아 평양에서 제일 큰 우편집중국 같았다. 나중에 돌아 올 때 이곳에 들려 상설 우표 전시()만 하는 것을 보았다. 김승환 교수는 벽초 홍명희 초상화가 그려진 조선우표 30전짜리 10장을 사서 나에게 선물하였다.

평양고려 호텔에서 7월 25일 나는 생일을 맞이하였다. 카네이션 꽃과 포도주 한 병을 선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북쪽의 가수가 노래를 불러주었다. 북쪽에서 유행하고 남쪽에 소개된 노래 다섯 곡을 불러 주었다. 나는 감동했고 앞으로 나가 가수와 포옹을 하였다.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평양 첫 날 설렜던 마음이 백두산을 다녀오고 묘향산을 다녀와 진정 되었다. 보현사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 전시관은 엄청난 규모였다. 10만평이 넘는다고 했다.

첫 날 밤 환영 만찬장에서 만났던 신흥국 시인과 평양의 대동강에 나가 술 한 잔 하는 것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 미안함에 나는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2월은 봄' 신흥국, '어머님 탄생하신 12월은/ 흰눈 앞세우고 와도/ 내 마음속엔 봄/ 꽃이 피는 계절//회령의 고향집뜨락/ 백살구 꽃잎이 보여와서인가/ 어머님 제일로 사랑하시는/ 진달래꽃향기 풍겨와서인가//어머님은 안겨주셨어라 봄!/ 일제의 칼부림에 얼어붙은/ 이 나라 산에 들에 집집에/ 해빛이 넘쳐나는 광복의 봄//어머님은 가꾸셨어라 봄!/ 진달래 송이송이 수놓으신 13도지도/ 한가슴에 안으신 삼천리에/ 기쁨이 움터나는 봄//진정/ 찬바람 부는 겨울에 태어나시여/ 어머님은 그리도 봄을 사랑하셨는가/ 한평생 바라신 념원/ 봄 속에 있어 봄은 어머님은 사랑이던가//그 봄속에 생을 받아/ 그 봄계절에만 사는 이 몸/ 장! 병 받들어/ 어머님 념원 꽃피우리라/ 다진 마음 더 붉게 피어나는 12월//아, 강산에 흰눈이 내려도/ 어머님 밝은 미소 해빛으로 안고 사는/ 내 조국의 12월은 봄/ 장군님 통일강성대국을 꽃피우는/ 어머님사랑의 봄이여라!' 서정시이지만, 그 서정시는 북쪽이 좋아하는 시 일 뿐이었다. 신흥국 시인은 무척 지적으로 보였다. 그는 눈빛이 살아 있었다.

그윽하게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그립다. 그와 61주년 광복절 날 만날 수 없었지만 그가 서울에 오면 문우 배창환 시인처럼 나도 마음껏 술을 마시며 그와 만남을 기뻐하리라. 대동강물이 춤추고 한강물이 넘실거리며 백두산에서부터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의 화려한 잔치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꽃은 꽃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나무는 나무로 짐승은 짐승으로 진실 되게 만날 수 있으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