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측지심
여측지심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4.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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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오늘 아침 시사 주간지에서 글쓰기가 붐을 이룬다는 글을 읽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판매 분석에 따르면 ‘글쓰기’와 관련된 책이 무려 993종이나 된다는 내용을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학에서도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고 한 문화센터에서만 일 년에 20~30개의 글쓰기 강좌를 열고 ‘우리말 글쓰기 과정’에 1100명, 작가 양성과정에 900명이 수강을 신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문화센터에서 배출된 사람이 이 정도니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많겠는가?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일이지만 긴장을 주는 기사라서 좀 더 자세히 읽어보았다. 글을 쓰는 목적도 다양해서 SNS에서 보다 섬세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또 제안서나 회사의 업무를 보기 위해서 또는 책을 출간해 보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글을 잘 쓰려면 제대로 살아야하고 제대로 살다보면 좋은 글이 나온다는 기자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 날 오후에 한 문우의 전화를 받았다. 연세가 꽤 드신 분이었는데 가입해 있는 문학회에 회장선거가 있었던가 보다. 책을 보내주기도 하고 3번씩이나 전화를 해서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얼마 후 신문을 보니 그 분이 당선이 되어 기쁜 마음에 전화를 했는데 어째 목소리가 다르게 들리더란다. 그래도 그럴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건의 사항이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 문학회에서 이리이리 했는데 앞으로 회장님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거만한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라고 하며 전화를 끊더라는 것이다.

여측지심이고 아무리 선거가 끝났기로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느냐고 분개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달라야 되지 않겠냐고 덧붙이면서 어찌 저런 사람을 지지 했나 화가 나더라는 전화였다. 어느 단체에서든 선거를 치를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 간 크고 작은 모임에 적을 두면서 자주 보아온 일인데, 뒷간 갈 때 마음과 갔다 오고 날 때의 마음 다르더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그러려니 해 왔는데 문우는 약간 고지식한 성격인지 곧이곧대로 믿었나 보다. 하기야 탓할 수도 없는 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나면 마음이 달라지는 처세가 문제다.

나 또한 한 단체의 장長으로 책임을 맡고 있다가 얼마 전 임기를 마쳤다. 곁불도 쬐고 나면 서운하다는 게 실감이 갔다. 혹시 나도 임기 동안 여측지심의 마음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임기 동안 특히 서운한 마음을 느꼈을 것 같은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을 잡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혹시 내가 임기 동안 서운하게 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하라는 말을 전했다. 그럴 리가 있느냐고 웃었지만 설령 있었다 해도 경솔하게 드러낼 분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니 늘 한결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듯 하지만 어렵고 참으로 중요한 걸 알겠다.

제대로 살고자 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적어도 상대방 입장에 설 줄 알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산다면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평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글 스승도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강조했는데 10 년이 훨씬 지났어도 아직 좋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참되고 바르게 살지 못한 것 같아서 울적하다. 인간의 향기는 됨됨이에서 나온다는 것,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학벌도 권력도 아니라는 걸 또 느끼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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